인간은 생의 한계 때문에 시간개념을 온전히 이해 하기가 쉽지 않다. 하루살이가 한달이나 일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수긍한다면 납득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2천년이 살아온 자취로 가고 새천년이 시작됐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시계의 초침이 재깍거리고 해가 떴다지고 떴다지고 하는 동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나, 그러나 이것만이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 전부는 아닌 것이다. 더 깊은 해석이 필요하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는, 2천년의 첫 해를 바라보는 지점이 지구에서 각기 다르고, 첫 햇살을 맞이하는 시간이 지구에서 곳곳에 다르듯이(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휠 수 있다는 설명 을 일찌기 해놓았지만) 우리들 인간의 인식의 문제이다.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인식작용이 인간과 다른 동물에게는 신이 필요치 않을 수 있고, 그래서 동물은 인간처럼 기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신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 인 이상 인간이 지니는 영혼의 깊이만큼 인식할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오염된 영혼을 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한 계기로 대희년이 필요하다. 2천년대의 출발점이라는 시작의 의미도 이런 매 듭에서 찾아야 한다.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것을 새롭게 하는 다시 태어남도 뜻깊다. 해는 그냥 뜨고 진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것을 2천 년의 인류사로 본다. 대희년을 맞는 마음자리는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원점에 두어야 옳다. 처음 그대로 더불어 함께 어울려 사는 지혜로 평화를 빌면 그 기도가 사무칠 때 들어주시 는 분이 하느님이다.
예수 이전과 예수 이후의 세상을 교리에서 갈라보듯이, 지나간 2천년의 역사와 새로운 천년의 역사를 나눠서, 평화와 화해의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모두의 의무이다. 번영과 진보의 그늘이 너무 넓어졌다. 과학이 평화 아닌 불안을 가중시킨 현상도 되돌아 봐야할 생각거리다. 도망갈 곳도 빠져나갈 곳도 없는 쓰레기더미 현실에서 찾아야 할 출구가 방주의 창이다. 미래의 운명은 오늘 아침 첫 기도로 시작된다. 아득한 터널 끝이 안개 속에서 조그만한 구멍으로 다가올 때, 흙과 물 나무와 풀로 삶을 엮던 처음의 영혼을 그리워해야 한다.
하느님이 마련해준 자연 그대로의 모든 것과 더불어 잘 어울려 사는 삶의 기본에서만 평화를 만나고 문화를 키울 수 있다. 기도와 철학은 이렇게 간소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비를 아무리 내려주어도 품지못하는 바윗산에는 말라죽는 고사목이 많다. 이 목숨을 위해 하 느님은 서리눈꽃을 마른가지마다 수북히 달아준다. 그러나 사람은 이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보기에 좋다며 사진기 셔터만 눌러댄다. 눈 오는 날 영혼의 빵을 위한 떡가루를 세상에 골고루 나눠준다고 보면 하느님의 뜻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 오는날을 하늘나라 잔칫날로 보는 아이들 눈이 바로 방주의 창이다. 2천년의 뜻은 영혼을 새롭게 씻어내는데서 의미가 커진다.
2천년을 관통해온 하나의 뜻은 사랑이다. 이 사랑이 앞으로의 천년에도 의연한 질서의 축이다. 이런 확신이 나와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묶어둘 수 있다. 천년의 샘도 사랑의 샘. 그래야 거 기 비치는 구원의 빛을 영혼이 볼 수 있다. 거룩한 빈자의 손은, 최근에 만난 마더 데레사 그 한 분의 손만이 아니다. 번영과 진보의 그늘에 가려 다른 많은 거룩한 손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 세상이 평화 대신 불안에 담겨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밤에 자고 아침에 깨어나는 것은, 빛 의 그림자 속에 수도 없이 사랑을 쏟고있는 빈자의 손들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맹인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테너는 눈 뜨고 못보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빛을 노래 로 들려준다. 그래서 그를 눈먼 천사라고 말한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나 헨델의 라르고에서 그 는 목소리로 우리의 영혼을 씻어준다. 영혼은 이렇게 새로워질 수 있다. 지금 겨울바다에서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은 봄을 데려오는 초록빛 기운이지, 결코 바람결에 섞 인 권력냄새가 아니다.
유전자를 변형하는 생명공학이 많은 돈을 번다는 이야기 보다, 희망을 품은 철새들이 나래를 펴 바다 위를 마음껏 날듯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을 마음껏 추구하는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눠보자. 귤 한알이면 방안에 향기를 채우고 촛불 한자루면 기도하는 골방에 밝음을 채운다. 가슴에 사 랑 한줌이면 주변에 함께 숨쉬는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
교리가 가르치는 것은 우리들 가슴에 북소리 같은 영혼의 울림을 들으라는 것이다. 영혼이 깨 어있어야 그 소리를 느낄 수 있다.
평화의 하느님이여, 비록 그대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이성에 의한 인식수단일 뿐이라 해 도, 우리들의 영혼을 위해 새를 날려보내게 하여주소서. 희망의 거리를 측정할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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