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속에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구두 뒤축을 밟아 구두가 벗겨졌다. 짜증 섞인 눈으로 누가 그랬나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한 여대생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빠르게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다. 다른 사람이 그랬나 싶어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봐야 했을 지경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겪는 일상의 다반사중 하나일 뿐이다.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무례지국」이라는 어느 외국인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예절도 지키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만화에서 본 이야기이다.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가 영어학원을 다녀와서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엄마, 엄마, 나 오늘 영어 배웠다 『무얼 배웠길래 그렇게 호들갑이니?』『나 익스큐즈 미』가 무엇인지 안다 엄마는 내심 딸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더욱이 예절바르게도 익스큐즈 미부터 배웠다니 얼마나 기특한가.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치기를 잘했다 싶었다. 『어이구 우리 딸이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구?』『그럼. 알구말구. 그건 「비켜! 저리 비켜!」란 뜻이야』. 너무나 자신 있게 조잘거리고 있는 딸 앞에 엄마는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동방무례지국인 한국의 일상생활의 한 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만화이다. 우리는 『실례합니다』라는 낱말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그러니 상황 속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그 말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서양에서는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용서하십시오』등의 말은 그야말로 말할 때 늘 입에 붙어 다니는 말들이다. 보통의 서양인들은 하루에도 그 말을 열 번 이상은 하며 산다. 그런데 우리는 무얼 받는 것은 좋아하니까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즐겨 해도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등과 같은 자기를 낮추는 듯한 발언은 아예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기를 절대 꺾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요즘 부모들이기에 아이들 앞에서는 그런 약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동방무례지국에서 일상을 지내야 하는 한국인들은 매일매일의 짜증을 표정 뒤에 숨기며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여 사소한 시비에도 잘 폭발한다. 한국만큼 사소한 일에 언성을 높여 싸움을 하고 경우에 따라 인명살상까지 자행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주차시비로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간 큰 민족이라고나 할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원만한 관계이다. 오죽하면 「인간(人間)」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 사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우리는 관계를 중요시해 모든 것을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보았다. 반면 서양사람들은 모든 것을 개체 또는 원자로 환원시켜 보기를 좋아했다. 개체나 원자가 뜻하는 바는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최소 단위이다. 지금 자유와 평등으로 대변되고 있는 개인주의는 철두철미 이러한 서양식 문화 산물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간직해 왔던 관계의 시야를 버리고 어느새 서양인들의 개인주의 시각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의 「사이」를 보지 못하고 오직 따로 따로 독립된 개체만을 보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사이」가 제거되어 서로 무관한 남남들이 맨몸으로 만나 부딪치며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 살고 있다. 서로 가장 믿어야 하는 부부 관계도 이제는 서로의 이익을 따지는 불신의 사이가 되었다. 피를 나눈 자식과 부모의 「사이」도 자신의 편함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의 칼에 의해 갈갈이 찢기어졌다. 한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형제 「사이」도 더 많은 유산을 받기 위해서라면 피를 보아야 하는 원수관계가 된다. 존경과 사랑의 관계인 스승과 제자간의 사이도 고발과 고소로 이어지는 살벌한 투쟁의 사이가 되어 버렸다.
섬김, 모심, 사랑, 믿음으로 채워졌던 부모 형제 친구 사제 「사이」가 이제는 평등하고 구별이 없는 「개인」들로 해체되어 그 「사이」는 이익, 편의, 돈으로 연결되고 있다. 남남으로 흩어진 개인이 모인 사회 전체는 불신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죄악인 부모 살해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망치로 때려죽인 뒤 시신을 토막내어 쓰레기봉지에 담아 여기저기에 갖다 버렸다는 부모토막살해 사건을 듣고서는 모두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럴 수가!」하며 경악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건에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사이」를 애정으로 채워주지 못한 부모에게도 책임은 있으며 「사이」를 믿음으로 이어주지 못한 사회에도 책임은 있다. 사람 「사이」를 성령의 사랑의 불꽃으로 채워주지 못한 가톨릭 교회에도 책임은 있다.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사람들 「사이」를 사랑으로 채우소서!』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드려야 할 인간의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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