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지 55년. 2000년 8월 15일. 반세기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냉전의 얼음 장벽이 뜨거운 눈물로 녹아내리기 시작하던 날. 나는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자격으로 김포공항에 나가 북한측 이산가족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대표단장을 이끌고 4반세기만에 서울에 온 유미영 (75.천도교중앙위원장) 단장은 나에겐 이미 초면이 아니었다. 『어서 오십시요.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아이유, 이렇게 모두들 나오셨군요…』 유미영 단장은 약간 흥분한 어조로 수많은 TV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귀빈실에 자리잡은 북쪽 손님은 아직도 상기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예의바르게 눈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러 오시느라고 힘드셨겠어요』 『아니야요. 아무 일 없시요. 잘 왔수다』 나는 그래도 정중하게 북녘에서 온 손님에게 차를 권하며 역사적인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진 배경에 정치적인 결단이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남북의 두 정상이 참으로 큰 일을 해냈습니다. 6.15 선언이야말로…』라고 하자, 유미영 단장은 뒤질새라 한마디 잊지 않고 내뱉는 것이었다. 『아니야요. 우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통크게 결단을 내리셔서…』나는 속으로 좀 언짢았지만 강물에 흘려내버리듯 그냥 한쪽 귀로 듣고만 있었다. 『우리 경애하는 장군님은 어찌나 자상하고 친절 하신지 평양에서 생활하는데 하나도 불편함이 없이…』 줄기차게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름을 불러 나는 약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어쩌나? 나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대통령 덕분에 이렇게 잘먹고 잘산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주님의 은총으로 이렇게 행복하게 지낸다고 할 것인가? 이런 때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같으면 뭐라고 했을까? 과연 경애하는 장군님이나 수령님은 자상하신 분인가보다.
『우리 경애하는 장군님은 겨울철에 평양시내 한복판 에서 여성교통 일꾼(순경)이 고생하는 걸 보시고 따뜻한 털장화를 하사하시고…』 그렇다면 남쪽 대통령은 뭘하고 있담? 추운 겨울이 돼도 헌 양말짝 한켤레 안보내주니…원. 다음번엔 투표하지 말아야지…. 체제의 차이겠지 뭐. 생각의 차이겠지 뭐. 하기야 북쪽의 이복연(73세)씨는 남쪽 아내 이춘자씨 (70세)를 50년만에 만남 감격적인 순간에도 『장군님이 하루 사이에 그립다』고 말했을 정도니. 이몽섭씨(75.경기도 안산시 초지동)의 북쪽 딸인 이도순씨(55세)는 『우리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으로 살아와시요. 아버지도 장군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시요』라고 까지 말하는 것이 아닌가.
15일 첫 상봉에서 껴안고 통곡하다가 그치자마자 언니가 『내가 ○○이 되었는데 이것은 정말 모두 장군님의 사랑과 은혜로 된거야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뒷골이 당기면서 혈압이 확 올랐다는 것 아닌가. 이번에 감격적인 가족상봉을 「장군님」의 공으로 돌리려는 발언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85년때처럼. 남쪽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은 확실한 변화였다. 그렇다. 확실히 「장군님」의 덕분에 이렇게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진 것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경애하는 장군님이 제발 통 큰 결단을 내려 이산 1세대 123만명이 자유롭게 북한을 찾아가고 면회소 에서 만나고, 하다못해 편지 왕래도 좀하고 생사확인라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측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18일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50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고 살아온 10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려는 것은 배고픔 등과 같이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면서 이산가족들이 궁극적으로 재결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대목에선 우리도 정말 「경애하는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끈질긴 노력끝에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이 「경애하는 장군님」 덕분이든지 「우리 대통령 덕분」이든지 여기서 왈가왈부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저 더 늦기전에 반세기동안 소식도 모르고 헤어져 사는 저많은 사람들이 단 한번이라도, 아니면 죽는 그날까지 다시 한데 어울려 인간답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정녕 하느님의 은총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을 수 없다.
유미영 단장이 평양으로 돌아가던날, 나는 워커힐에서 김포공항까지 차를 함께 타고 가면서 저쪽 강가에 세워진 새남터 성지와 절두산을 가리키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던 선조들의 은덕을 뇌아렸지만 유미영 단장은 창밖을 내다보며 앞뒤로 쫓아와 달려드는 기자들의 취재차량 때문에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하여간 남쪽에선 기자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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