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소나기」로 반세기 동안 독자들의 가슴을 적셨고, 평생 고결한 지조로 일관했던 문단의 큰별 황순원 선생이 지난 14일 타계했다. 이튿날 아침 신문들은 이례적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넓은 지면을 할애해서 그의 생애를 집중 조명했다. 정치인을 비롯한 각계 저명인사의 부음을 전할 때 지면배정에 인색한 편인 언론의 관행으로 볼때 매우 각별한 예우가 아닐 수 없다.
무엇 때문일까? 언론매체의 이같은 배려는 고인의 문학적 성취 뿐 아니라 그 고결한 삶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내는 경의와 정중한 조의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황순원 선생은 평소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고 엄정한 문학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알려진 대로 우리시대의 가장 탁월한 「언어미학의 거장」이다. 2000년에도 시에는 서정주, 소설에는 황순원을 꼽을 만큼 현대문학사에 차지하는 자리는 크다. 황순원 선생은 분명 문학의 「산교사」이자 「문단의 사표 (師表)」다.
그의 타계소식을 접하며 새삼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치열한 문학정신이며 고결한 삶이다. 그는 평생을 소설가로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만 일관했다. 예술원회원이었지만 재직대학에서 제의한 박사학위를 사양했을 뿐 아니라 정부가 주겠다는 훈장도 거부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자부 이외에는 어떤 명예에도 연연 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와 소설 외에는 어떤 청탁이나 인터뷰도 거절했다는 일화, 『관직에 대한 제의를 받았다는 자체가 이미 자기 처신을 잘못한 탓』이라는 말로 제자들에게 허명(虛名)을 경계할 것을 깨우쳤다는 일화, 이 모두가 그의 생활철학과 실천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을 사는 모든 이에게 올곧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부질없는 명예욕 때문에 사회로부터 엄혹하게 지탄받고 결국은 그 삶 전체를 욕되게 마감하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해 왔다. 특정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어 그것만으로도 존경의 대상이었던 인사가 어느 날 정계나 관직에 발을 들여놓음 으로써 오히려 그때까지 지켜왔던 명예를 송두리째 잃어 버리는 경우가 그처럼 많았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일부 권력층, 특권층, 상류층 인사들로 해서 전에 없이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30촌이 넘는 권력 실세의 인척이 조카로 행세하며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을 불법으로 대출받았다는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으로 시끄럽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권력자의 친척을 빙자했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압력없이는 그만한 대출이 가능했겠느냐며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인척의 위세가 그 정도라면 권력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친척의 세도는 어떨 것인지를 상상하면서 신판 권문세가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출세지상주의자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가문에서 권력자가 나오면 대개의 친인척들은 권력가와의 관계를 내세워 행세를 하거나 음덕을 보려고 든다.
옛날에는 별것도 아닌 사람이 권력 주변에 가더니 목에 힘주고 거들먹거리다가 하루 아침에 불명예를 안고 벼랑으로 추락하는 꼴은 무척이나 많이 봐왔지만…. 그런가하면 권력가는 자신의 비리와 약점을 감출 수 있는 자리에는 가급적 친인척 등 측근들을 앉히려 한다. 낙하산 인사가 항상 말썽을 빚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민주당의 어떤 의원 일행이 지난 추석 귀향활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비상등을 켠 경찰차의 선도를 받았을 뿐 아니라 교통체증이 빚어지자 반대차선으로 역주행까지 하는 「횡포」를 부려 빈축을 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은 교과서에만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엔 조그만 권력이라도 갖게되면 그것을 사적으로 이용해 우쭐거리고 위세를 부리려는 특권의식이 유난히 강하다. 최근 우리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국민들을 상심케 하는 사건들도 모두 권력을 이용한 특권층들의 횡포 때문이 아닌가! 허명과 허욕에서 비롯된 부산물들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요즈음, 사회 원로로서의 황순원 선생의 생애가 유난히 고결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같은 허명과 허욕에서 철저하게 스스로를 지켜온 자세 때문이 아닐까? 이 척박한 시대에 한 작가가 가톨릭사제처럼 견지해왔던 깨끗한 삶의 자세를 돌아보며 느끼는 게 많다. 이제 우리도 모두 허명과 허욕의 옷을 벗어던져 버릴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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