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가는 길은 아직 험했다. 제2차 이산가족상봉단장으로 150명을 이끌고 그리던 고향으로 가는 길은 짙은 안개 때문에 3시간이나 막혔었고, 지난 토요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일부 신문보도에 불만을 품은 북쪽 사람 들이 출발을 지체 시키는 바람에 또다시 3시간이나 늦어졌다.
하지만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그리운 혈육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데 3시간이면 어떻고 사흘이면 어떤가! 한강에서 대동강까지 비행기로 1시간이면 달려올 수 있는 길을 50년이나 걸려 그나마 우리 몇사람만이 오가지 않았는가!
이번 상봉에 참여하지 못한 10만 9000여명이나 되는 신청자 이산가족들은 오늘 상봉장면을 보면서 더 애타게 그리워지는 혈육 생각에 얼마나 안타까운 눈물을 지었을까!
『아이유, 세상에 못볼 줄 알았는데… 이제 만나고 왔으니 생각 하지 말아야지… 생각이 나고 또나고…』 올해 100세의 유두희 할머니는 평양을 다녀온 후 또렷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아들 신동길(75)씨를 만나고 돌아온 꿈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언제 또 가겠어. 빨리 통일이 돼야지』그렇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노령 이산가족들은 비운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하고 있지 않은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혈육들을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그 감격만으로도 분단의 장벽을 훌쩍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만남이 물꼬가 돼 모든 이산 가족들 뿐 아니라 온 겨레가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는 우리 민족의 감격적인 역사가 되길 바랄 뿐 이런 짧은 만남이 재이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평양에서 사흘 지내는 동안 나는 줄곧 남북의 두 정상이 그래도 용케 결단을 내려 이룩한 역사적인 6. 15선언이 헛되지 않도록 오히려 지금부터 차근차근 내실있는 남북 교류를 물흐르듯 잘해나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 통일되면 그때 만나자, 울지 말어 노래 불러 우리 함께…』하면서 온 가족이 『통일이여 어서 오라』고 외치다시피 하며 소리높여 눈물흘리며 헤어져야 하는 혈육들의 모습을 떠올리게되면 지금도 목이 메이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할아버지, 꼭 다시 오셔야 해요. 다시 만나요. 할아버지 약속해요』차창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떠나는 할아버지의 새끼 손가락을 갖다대며 엉엉 목놓아 울며 소리치던 어린 손녀의 목소리가 이 순간에도 7000만의 가슴 가슴마다 메아리치고 있지 않은가!
『주님, 이 혈육간의 애틋한 정, 하루속히 모든 이산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어야하는 이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나는 평양을 떠나기 앞서 장충성당을 찾아갔다. 십자가 고상 앞에 꿇어앉아 무조건 대들다시피 하며 내 어깨에 짊어지워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모든 은혜에 감사한다는 기도를 올렸다. 무거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시는 주님도 『야, 이놈아, 나도 힘들다. 나도 많이 참는다』며 엄숙한 표정으로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것 같았다.
장충성당 총회장 차성근 형제와 조선 가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서기장 강지영 형제 등의 안내로 평양 유일의 천주교 공소에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이산가족의 기쁨만큼이나 큰 은총이었다.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시고 온 겨레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소서』하며 기도했다. 묵상을 끝내고 나오면서 여기라도 자주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천주교중앙협의회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종수 신부님과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 한정관 신부님이 여길 다녀갔다면서 본당 총무 조성원 형제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리구요. 어제 최창무 주교님께서 광주교구장에 착좌하시는 날 아니었습네까? 잘 됐겠지요?』대림 첫주가 시작되는 날 나는 촛불이라도 켜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당을 뒤로하고 평양을 떠나오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북한에 초라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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