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를 넘긴 아니, 은퇴를 하셨음에도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보도됐을 때, 언제나 그분의 살아온 몸짓이 그러했듯이 신선했다. 가톨릭 신자임이 자랑스러웠다. 몇해전 한국의 권위있는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것에서 21개 직업 중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가톨릭 신부가 1위를 차지했을 때도 그랬다. (21개 직업 중 꼴지는 국회의원이었다)
신자 운동선수들의 성호긋기
지난 98 프랑스 월드컵대회는 브라질의 호나우도를 영웅으로 탄생시켰다. 종횡무진으로 상대방 골문을 위협하다 마침내 득점을 했을 때, 그가 성호를 그으며 뛰는 모습에서도 그랬다. 그는 그의 승리를 주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것이리라.
96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방수연도 그랬다. 그녀가 뜨거운 열전 끝에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의 눈물 젖은 얼굴도 천사 같았다. 흔히 운동선수들이 승리를 하게 되면 제일 먼저 환호의 고함을 지르거나 감독과 얼싸안는 것이지만 방수연은 먼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럴 때 가톨릭 신자임이 자랑스러웠다.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그녀가 달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불우한 사람들을 남몰래 돕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김수환 추기경께서 그녀의 결혼 미사를 집전해 주셨을 것이다.
일본에서 'SUN'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프로야구 선동열 선수도 그렇다. 그는 이국땅에서 땀흘려 번 돈을 아껴 모았다가 1억원을 매년 추기경님께 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한다. 이런 뉴스를 보면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충남 서해안 내포지방을 돌면 가톨릭 신자임이 감사할 뿐임을 느낀다. 그것은 로마같은 위대한 성지를 순례할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로마나 파리가 세계적이라면 충남 내포지방은 한국적이다. 너무나 한국적이다.
해미.합덕.보령.갈매못.청양 줄무덤.공주 황새바위… 200년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어떻게 그토록 쉽게 순교를 할 수 있었을까? 논에서 일을 하다가 또는 가족들과 밥을 먹다가 포졸들이 가자고 하면 울부짓는 자식들의 애절한 모습도 뒤돌아보지 않고 끌려갔는가? 그리고 배교(背敎)를 거부하면서 기꺼이 목숨을 바쳤는가? 이땅에 이토록 많은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한 종교가 또 있는가? 이런걸 생각하면 나는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교황께서 분쟁의 종식과 세계평화와 생명존중을 위해 호소하시는 모습을 TV에서 볼 때, 나는 또한 가톨릭 신자임이 자랑스럽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인도 캘커타 빈민굴에서 봉사하는 마더 데레사의 모습이 보도될 때마다 역시 자랑스러웠다. 마더 데레사가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고, 온 세계의 추도 속에 세상을 떠나 장례미사를 치룰 때… 역시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더 데레사처럼 가난한 이웃, 불우한 장애인과 병자를 위해 눈물겹게 봉사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많다. 이들 앞에만 서면 나는 자꾸 작아지고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무한 자랑스럽다. 한국 민주화를 이룩한 주역들이 천주교 신자임도 자랑스럽다. 때로는 가톨릭 신자이기에 부끄럽고 가슴아플 때도 있다.
소외된 이들 위한 눈물겨운 봉사
자동차 핸들 위에 묵주를 걸어 놓고도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담배 꽁초를 밖으로 버리면 눈을 감고 싶다. 정말 그것은 꼴불견이다. 죄를 범벅으로 지고도 회개하지 않고, 어쩌다 성당에 나와 영성체를 하는 국회의원을 보면 더욱 면괴스럽다. 그런 국회의원들은 사도신경 한 줄도 못 외우고 성당에 가서는 가톨릭 신자임을, 절에 가서는 불자임을, 교회에 가서는 개신교 신자임을 행세한다.
올해 연초부터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사건의 주인공 L씨가 가톨릭신자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는 다행히(?) '냉담중'이었고 신자들 모임에도 연락을 하면 '나는 성당에 안나가는 사람이요!'하고 얼굴을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교도소에 가서는 신부님께 연락을 해서 신앙서적을 넣어 달라고 했으며 신부님은 그의 부탁을 들어 주었고 그를 따뜻이 품어 주었다. 그렇다. 이렇게 죄를 지은 사람도 받아주고, 용서해 주는 모습에서 나는 가톨릭의 자랑스러움을 뜨겁게 느낀다. 그리고 소금 같은 것을 느낀다.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되어 모든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일도 있지 않았던가.
소금기 같은 가톨릭 정신
태풍은 무섭지만 바다의 생명인 소금(염분)을 배합하는데는 꼭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에 중국 양쯔강이 범람으로 황해의 염분이 줄어들자 태풍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이 사회가 썩는 것이 소금의 부족이라면 소금기같은 가톨릭의 정신, 그 사랑을 섞어야 할 것이다.
태풍아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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