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월 교구청에서 행정직을 맡고 있다가 신도시에 있는 새로 건축한 성당으로 와서 신자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많은 신자들에게 착한 목자로서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드리며 정을 나누고 살까 걱정이 앞서고 있다. 그렇지만 신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재속 사제의 직분이라 그런지 마치 고항에 온 것 같은 흐뭇함과 기쁨을 억누를 길이 없다.
새로 온 신부를 맞는 신자들 얼굴
그런데 나는 여러 성당을 다니면서 이상하게도 성당을 지은 신부의 바로 후임으로 간 때가 여러번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임 신부와 신자들간의 애정은 어떤 신부보다도 각별한 정이 들어 있음을 본다. 이곳 성당도 예외는 아니다. 참으로 신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가 도착하니까 몇 분전에 전임 신부를 떠나 보내드린 슬픔을 애써 감추고 이젠 새로 온 후임 신부를 맞기 위해 얼굴에 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한편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성당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도 성당을 지어보았기 때문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다 보니 신부와 온갖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대로 들은 대다가 이제는 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때 주교님은 야속(?)하게도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 보내니 신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러면 후임 신부라도 신자들의 그런 심정을 알아주면 좋겠지만 어떤 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서 내색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나도 마음이 울쩍할 때가 있다. 사실 성당을 지은 신부의 후임으로 간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그리 좋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전임 신부와 온갖 정이 들대로 들어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전임 신부에 대해 섭섭한 말 한마디는 신자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기가 십상이라서 한동안 신경을 써야만 한다.
나는 이런 처지의 성당을 여러 차례 다녀보면서 그리고 직접 건축을 해보면서 크게 느낀 것은 전임 신부와 신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성당을 짓기까지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가를 절실히 깨닫을 수 있게 되었다. 건축을 하면서 문짝 하나 문고리 하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가 충분히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그런가 하면 건축비 마련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일들에 휘말리다 보면 신자들에게 마음에 없는 섭섭한 말이나 행동을 수없이 하고서는 잠자리에서는 혼자 괴로워 하는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는 건축을 하는 신부들은 다 겪는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전임 신부와 신자들이 이루어 놓은 이 큰 사랑의 업적과 결실을 결코 흐트리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는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면서도 깊이 정이 든 신부를 잃은 섭섭함을 신자들 마음 속에 아름답게 간직해서 신앙의 성숙으로 유도하게 된다면 더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나는 1970년에 사제로 서품을 받고 교구의 여러 사정 때문에 보좌기간을 지내지 못하고 바로 한 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을 하게 되었는데 전임 신부님이 내가 부임하기 전 미리 나를 불러서 성당의 여러 가지에 대해 세세하게 일러주시고 사제관 안팎을 정갈하게 정돈을 해 주셨는가 하면 사무용품에서 시작하여 화장실의 휴지에 이르기까지 너무 찬찬하게 준비를 해 주셔서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우리 교구에 원로신부로 계시면서 젊은 신부들의 호랑이 역을 의연히 하고 계신 그 신부님의 후임으로 가는 신부는 시체 말로 땡 잡았다고 소문이 날 정도이다. 그만큼 후임 신부에게 너무 자상하게 배려해 주시는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내가 온 이 성당도 전임 신부가 이것 저것 세세하게 배려해 주어서 나의 후배 신부이지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신부들이 한 성당을 떠나고 오고 하는 중에 가끔씩 불편한 관계를 갖기 쉬운 약점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까를 새 임지로 올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신자들이 새로 부임하는 신부에게 쓸데없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신부들이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신자들이 생각없이 전임과 후임을 평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거야말로 최고의 선을 향한 삶을 살기로 굳게 다짐한 사제들이기에 인간의 약점을 능히 뛰어 넘어주기를 신자들은 간절히 바랄 것이다.
전임신부를 감싸주는 젊은 신부들
우리 교구의 젊은 신부들이 선배 신부들의 취약한 면을 뛰어넘으려고 전임과 후임끼리 오고가며 정답게 아울려 지내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흡족하면서도 왠지 선배로서 부끄럽게 여기는 때가 있다. 전임 신부의 부족했던 점을 지혜롭게 감싸주고 좋은 점을 잘 키워가는 젊은 신부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미래가 너무도 아름답게 열려가고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선 혹시 그런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해도 우리 사제들의 인사이동에서만은 더 아름답게 우정이 꽃피어지는 것을 젊은 신부들에게서 보면서 나도 이곳 성당에서 건축하느라 온갖 고생하던 전임 신부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드릴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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