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인류 문명은 '후천개벽'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지구 규모의 환경파괴이다. 거꾸로 말하면 사회의 존재방식을 포함한 문명의 방향성의 전환 없이는 지구환경 문제의 해결 그리고 인류의 영속적인 생존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최대의 위기는 기술의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의 무위기 의식 즉 비관 속에 낙관이다. 최대의 비관적인 시대에 사람들은 최대의 낙관 속에 젖어 살고 있다. 최대의 절망 속에 사람들은 존재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헐리우드 영화나 TV에만 귀를 기울이고서 최대의 희망 속에 사는 듯하다.
최대 비관 속에 최대 낙관
지구행성의 미래에는 세 개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지금의 이런 기술구조로 밀어붙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문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도로의 병목현상처럼 기술은 우리의 목을 죄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있다.
오히려 작가 솔 벨로우의 지적대로 이 땅에 신비라는 신비는 모조리 벗겨 버리는 기술이 믿음을 대청소한 상태이다. 우리가 과거 농경사회나 자급자족의 천(天).지(地)).인(人)이 잘 조화되었고 환경부하가 없었던 중세의 시토, 베네딕도, 프란치스꼬의 수도원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는 수도원 생활이 사회의 인간화에 기여했지만 지금은 수도자 개인은 가난하고 수도원은 너무 부유하다. 또 하나의 교구처럼 경쟁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자신의 고유한 카리스마는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그들의 청빈이 사회화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복지시설을 지을 것이 아니라 수도원 자체가 하늘과 인간, 그리고 생태계와 더불어 자급자족하면서 자본주의 속에 살면서도 탈자본주의화된 생활스타일을 지향할 때라고 본다. 내 생각엔 그 길이 수도원에겐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지금의 모든 수도원들은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소비가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성과 삶이 통합된 제3의 길은?
제3의 길, 또 다른 길이 없을까? 영성과 삶이 통합되고, 일원론과 이원론, 성속일치(聖俗一致), 진속일여(眞俗一如), 생활공간인 지역과 신앙공간인 본당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마을을 만드는 것이 제3의 길이라고 본다. 초대교회나 우리나라의 초대 교우촌처럼. 창세기에서 묵시록이 아니라 묵시록에서 다시 창세기의 이런 에덴마을을 구상해 볼 수는 없을까? 21세기 중엽까지는 대도시에서의 인구회귀가 시작한다고 본다. 또 그런 신전원(新田園)주의, 신에덴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흐름을 일으키는 것이 요구되어지지 않을까?
식량은 21세기 최대의 과제
우선 이 마을은 축복을 나누는 농업에서 시작된다. 식량은 21세기의 최대의 과제이다. 그러나 지구에 부드러운 농업이다. 지구에 순(順)한 농업은 곧 폐기물을 남기지 않는 자연의 순환작업을 이용하여 농축림(農畜林)의 결합을 회복시키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가능한한 사용하지 않는 농업을 지향한다. 좋은 삼림을 만들면 좋은 물이 생기고 그것이 농(農)이나 축(畜)을 윤택하게 한다. 또 가축의 분뇨는 그대로 방치하면 악취를 발하고 하천오염의 원인이 되지만 'BMW'로써 농(農)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좋은 흙의 근원이 된다. 좋은 흙을 사용하면 화학비료나 농약의 투입량을 억제할 수 있다. 농축림(農畜林)의 축복을 잘 순환시키고 각각이 서로 연계된 농(農)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농업이고 21세기에 지향해야할 본연의 모습이다. 축복을 순환시키는 농업을 실천하기 위해서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연계, 지구에 순한 체험형 녹색 성지순례, 태양열, 태양광발전의 소프트에너지의 적극적인 도입, 마을 안에 지구에 순한 마켓이나 레스토랑, 환경자산(좋은 흙, 좋은 물, 좋은 공기, 좋은 삼림, 좋은 들판, 좋은 경관, 좋은 자연)을 지키고 따뜻한 얼굴을 한 경제시스템, 가능한한 자연에 손을 떼지 않고 있는 것은 살리는 궁리를 하는 것, 생태박물관 건설, 단순히 자연관찰만이 아니고 체험과 감동을 중시한 새로운 자연체험프로그램, 숲에서 시낭송, 산나물교실, 농장에서 발효식품 만들기, 지역인의 'Simple Life' 등 얼마든지 구상할 수 있다.
창세기 마을 만들기의 전체를 꿰뚫은 핵심은 창조영성이다. 이 영성은 자연의 순환작용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지역 안에서 영성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사물, 축복, 지혜, 기(技)를 순환시킴으로 지역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적어도 21세기는 우주공동체 즉 대신(對神)윤리, 대인(對人)윤리, 대물(對物)윤리 즉 환경윤리(eco-ethica)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새로운 생태마을이나 대안공동체건설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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