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만큼의 나이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생각 중의 하나였다. 억울하다는 생각의 핵심은 누군가에게 흡족하게 받은 것이 없다는 것으로 축소할 수 있는데 이 생각을 하면 늘 눈물겹기도 했다.
받은 것은 두고라도 오히려 나는 언제나 상대방에게 더 많이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속 깊이 열등감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가까이는 가족에게도 그랬다. 늘 나만 베풀고 있다는 이 생각이 거의 확신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이런 생각은 생활속에서 때때로는 자학으로 때때로는 우월감으로 때때로는 운명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이런 결론은 내가 불행하다는 쪽으로 기울게 하는 큰 원인이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도 내가 베푸는 것이 많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일생 자주 앓았으므로 나의 간병과 정신적 피로는 그것에 대한 확신을 주고도 남는 일이었고 9년이나 누웠다가 90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해도 그 모든 피해를 나만 입은 것으로 진저리를 치기도 했으며, 자식에게까지 늘 내 혼자 부모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가족에 대한 상습적인 생각은 놀랍게도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들에게까지 자주 나 혼자만 베푼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무서운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피해자였고 억울하였고 늘 피로했으며 기쁨이 없었고 걸핏하면 운명을 들추어, 나는 영 행복하기는 틀려버린 숙명을 타고 났다고 스스로 단정을 내리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희생자였고 남들은 나에게 늘 받는 자였으며, 나는 피해자고 남들은 나에게 가해자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바꿀 수 없는 나의 믿음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거의 불변원칙 처럼 굳은 것으로 아무런 불편없이 그 논리와 결론에 의해 나는 불평만하고 생색만 내고 살았던 것이다.
희생 성적 백점이었다. 이런 일방적인 생각은 내 의식 가운데 자리잡고 오랫동안 내 기쁨과 행복을 쪼여먹고 살았다. 그랬다. 그래서 불행이란 말은 너무 익숙하고 친하며 나만 베풀고 있다는 생각과 나는 전혀 받는 것이 없다는 생각과 합쳐져 늘 나를 배고프게 했고 목마르게 하였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자신이 생각해도 품위있는 태도는 아니었고 아름답지가 않았다.
불행속에는 오만이 깃들어 있었고, 배고픔에는 이상한 독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루가 5, 7" 어느날 미사가 끝나고 '1분 자기 생각하기'에서 나는 놀라운 자리바꿈을 하는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변화를 경험했다.
늘 나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에 속해 있고, 나의 가족과 타인은 죄인 한 사람에 속해 있었던 그 자리바꿈은 내게서는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순간이었다. 생각의 방향을 돌리는 것은 종교적인 바탕이 없이는 적어도 나같은 인간 미숙아에겐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악의 파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악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알이 껍질을 깨야만 생명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는 가족에게 별로 한 것이 없다. 시어머님이나 남편에게도 그들이 원하는 아픔의 단 한 곳도 어루만져 주지 않았으며, 스스로 피곤에 지쳐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만 돌려 오히려 가족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기본적인 의무수행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외로움을 눈물을 볼 수 없다는 죄중에도 큰 죄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야 알았다. 뿐만 아니라 그 흔한 희생을 몸소 실천한 일조차 없다. 양로원이나 부모없는 어린이 집에 생색내기 라면 박스 한번 준 일도 없으며, 친구들의 마음을 덥히는 따뜻한 말한마디를 인색하게 아껴온 기억밖에 없다. 희생 성적 빵점이었다.
최인호 베드로가 쓴 (6월 20일 일요일 주보)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처럼 굶주리는 어린이에게 눈의 보석을 빼어 새에게 전달하는 그래서 드디어 자신은 흉물로 변하는 동화는 어쩌면 나에게 내린 감격의 꾸지람이며 아름다운 감동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따져보면 단 하나도 내세울 일이 없는 희생 성적을 두고 너무 오래 오만하고 불행을 자초하고 살아온 것은 아무리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 부끄러움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은 너무나 큰 스스로의 속임수였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나를 주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묵묵히 보아 주셨다. 나는 성장한 어른이 아니라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주님의 어린 아이에 불과한 것.
그러나 나는 있는 힘을 모아 말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너무 늦게 목메이며 보석같은 이 한마디를 외운다.
"걸음을 가르쳐 주고 팔에 안아 키워주고… 호세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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