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는 예기치 않는 인물에게서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돌아올 때는 여행의 기쁨이 몇갑절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좀 많은 세월이 지난 이야기지만 이웃나라 어느 나라를 여행하면서 세 사람의 좋은 스승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그때 지갑이 얇아 공식행사를 끝내고 도시를 떠나 작은 시골에서 민박을 했던 적이 있다. 목수의 집이었는데 목수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가 늦은 시간에 들어오므로 우리와 부딪치는 경우는 적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우리의 식사를 맡아 있었으므로 거의 작은 행동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얼굴이 못생긴 그 아내는 참으로 너무나 정결하고 부지런해서 우리를 감동케 하였는데 그녀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옆에 늘 책을 펴 놓고 수시로 읽어 대곤 하는 것이었다. 눈을 뜨면 언제 일어났는지 항상 집안이 수정처럼 맑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게 하고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늘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여자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늘 웃고 늘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세탁기가 돌아가고 손에는 뜨개질을 하고 눈으로는 소설을 읽고 귀로는 음악을 듣는 그 여자.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이 손님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가 늘 조심하는 그녀의 자세는 놀라웠었다. 알고 보니 뜨개질하는 옷은 노인들의 옷이었는데 이웃 양로원으로 누구도 모르게 보내는 그녀의 마음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았다.
돌아올 때 우리는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눈이 부실 것 같았다. 다음 날은 관광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막 버스가 떠나려고 할 때 마이크를 잡은 아가씨가 말을 시작하였다. 좬저는 오늘 첫 출근을 하고 처음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준비를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대학을 포기하고 이곳에 취직을 했습니다. 고민을 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대학 캠퍼스에서 희망을 위해 뛰고 있을 때 저는 버스 속에서 젊음을 썩히는구나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전 굉장한 발견을 했습니다. 대학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타국사람들에게 우리 나라의 좋은 곳을 안내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제 우리 나라의 명소를 향해 떠나겠습니다좭 우리는 왠지 기가 죽었다. 그 어린 학생의 힘이 바로 그 나라의 힘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우리는 어느 음식점에 앉아 있었다.
우리 옆에는 그 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젊은이 둘이 다정하게 말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동행 중 한사람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모자간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아들이 맡았다.
좬어머니는 시한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우리 두 형제는 열흘간 직장을 쉬기로 했습니다. 맨 처음 어머니께 무엇을 해 드릴까요 물었지만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자 어머니는 바로 어제 언젠가 친구들과 온천을 하고 오다 먹은 양과자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는 바로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오랜 기억으로 더듬는 것이라 더디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그 집을 찾았을 때는 그 양과자집 점원이 막 문을 닫고 나오는 시간이었습니다좭
저는 애원조로 말했지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니 문을 열고 양과자를 사게 해 달라구요. 아가씨는 조용히 문을 열고 한 봉지 양과자를 내 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좬문을 연 대신 이 과자 값을 제가 내게 해 주십시오. 마침 오늘이 제 월급날입니다. 저는 늘 이 작은 시골에서 이 작은 빵집 점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을 아프게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전 지금 알았습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빵을 제가 팔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이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좭 우리는 점심을 먹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먹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그 나라는 반드시 힘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을 괴롭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상이나 부자나 지식인을 본 것이 아니다. 그 나라에서도 가장 힘없는 소시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민 공동체의 바른 의식과 정신을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좬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낱낱이 이름을 불러주시는 분(시편 147, 1)좭
하느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느님 공동체의 백성들이다. 한때는 나 하나는 아무 힘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그 많은 신부님 수녀님이 있지 아니한가. 하느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는 것만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의 소시민의 생각 행동이 그 나라를 대표하듯 나 하나의 기도와 행동이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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