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효율성 시장이라는 말이 무성한 시대이다. 그 중에도 교육계에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제는 거의 정설이 되고 있다. 교육계, 방송국은 물론 이제는 교회와 시민운동단체까지도 효율성과 경쟁을 조직원리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효율성에 대한 상식은 인간적 요인에 의해 다양화된다.
실업자 대책을 논의하는 프랑스에서는 주 35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이 실제로는 4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제 보다도 더 생산성이 높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연봉제와 성과급의 도입이 팀 내의 경쟁을 강화하여 협동을 파괴한 대가로 부가 비용을 높여 생산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보고서도 속출하고 있다.
‘교육개혁의 야심작?’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경쟁의 도입, 효율성제고에는 정답이 정해진 것처럼 토론과 이견을 거부한다. 최근 교육부에서 뉴밀레니엄을 향한 대학교육개혁의 야심작으로 두뇌한국21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시행중이다.
4.19이후 처음으로 대학교수들의 집단시위를 가져온 심각한 사안이었지만 일반 시민의 반응은 교수당사자들의 기득권 수호쯤으로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더욱이 시위 후에도 수많은 대학들이 두뇌한국21에 응모한 것을 바탕으로 교육부는 프로젝트의 적합성을 과시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효율성 지상주의 정책이 사실은 효율성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전형이 이 사업이다.
대학간 경쟁 봉쇄
첫째, 우선 사업은 대학간 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특정 연구분야를 의미하는 사업단의 적정규모를 분야별로 교수 20명 내지 50명 이상씩으로 구성하고, 거기에 상응할 만한 많은 수의 대학원생들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우선 이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학은 사실상 하나(서울대)밖에 없다. 컨소시엄(대학간 연합)의 형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학도 극소수로 제한된다. 교육부는 말끝마다 경쟁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실제로는 대학간 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기득권을 부여받고 독점의 이득을 누리고 있는 대학에 더 독점적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재벌중심의 경제성장의 빚으로 허덕이고 대우 등 재벌기업이 진 빚을 온 국민이 나누어 갚고 있는 이 시기에 교육계에서의 재벌을 육성하는 정책에 다름아니다.
둘째, 사업은 대학간의 서열구조는 교수간의 연구능력상의 서열차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다. 학벌과 관계없는 창의적 지식인을 강조하는 정책 전체와 부합되지 않게 철저하게 일류대학 교수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대학은 수능시험 커트라인으로는 서열이 매겨져 있지만, 대학교수의 수준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이른바 명문대학의 교수보다 우수한 교수가 지방의 별 볼 일 없는 대학에도 상당수 존재한다. 교수인력의 급팽창과 교수시장의 낮은 유동성, 그리고 그 배후에 작용하는 연고주의 때문에 초래된 현상이다.
교수의 기득권 강화
그러나 사업은 서울의 비 명문대와 지방대학에 존재하는 우수한 연구인력을 사장시킬 가능성이 많다. 특히 사업은 단 한번의 대학 수준의 평가로 7년간 지속될 구조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대학사를 통해 학문 경쟁력이 다수의 대학과 연구자 집단의 경쟁을 통해 이루어져 왔음을 잘 알고 있다. 이 사업은 이를 무시하고 많은 대학의 경쟁력의 싹마저 도려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교수전공에 대한 무시, 특정부문에 대한 불균형적인 비대화 등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을 집행하는 주체와 그 문제점을 다루게 될 주체가 다르다는 데 있다. 대안없는 화려한 계획 즉, 미래에 대한 보다 책임있는 대안 마련이 없는 화려한 계획은 계륵(鷄肋)이 되고 있는 또 하나의 연천댐을 만드는 것이나 진배없다.
국민연금제도 실시, 방송법 개정 등의 중요사안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이유있는 비판이었다는 것을 되돌아 보자. 게다가 교육은 국가기강을 만드는 중추가 된다. 팔만대장경, 세계 최초의 금속인쇄술을 자랑했던 한민족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학문 글읽기가 왕따 당하고 있는 적이 없다. 후세의 사가들이 이 세대를 무엇으로 기록할지를 정책 집행자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