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산간학교 때였다. 교우 몇 분과 함께 본당 주임신부님을 모시고 산간학교가 열리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 강토의 곳곳이 지나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하여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무슨 '가든'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이 전국 도처에, 비온 뒤의 죽순처럼 퍼져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늘 못마땅해하던 터였다. 그런데 이날 내가 본 것은 가든 차원의 서민적 식당들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외국에서 수입해왔음직한 귀한 목재로 지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통나무 식당들이 골짝마다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 상대의 관광업소도 아닌데 이런 과소비와 호사를 부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런 분별없는 과소비와 호사 풍조가 온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는 데 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평일인데도 그런 식당일수록 손님들로 넘치고 있었다. 조금만 경관이 좋은 곳이면 계곡이든 언덕이든 어김없이 그런 식당 아니면 모텔이란 이름의 여관이 버티고 있었다. 도대체 큰길도 없는 깊은 골짜기에 모텔은 왜 그렇게 많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지다 못해 하느님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 식당이나 모텔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는, 북한 동포의 굶주림 같은 것은 애당초에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눈 퀭한 노숙자나, 실직자의 고통 같은 것도 안중에 없을 터이다. 있다면 양껏 먹고 마신 포만감이나 정욕에 충혈된 음탕한 눈빛이 있을 터이다.
가장 잘 보존되어야 할 자연이 이런 식당과 여관들로 인해 훼손되고 있는 나라는 아마 세계에서도 우리 나라밖에는 없을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호수나 계곡 주변에는 아예 식당이나 여관 같은 게 없다. 수질 오염을 염려해서다. 어쩌다 별장 같은 게 있지만 폐수 처리 시설이 워낙 빈틈없어서 걱정이 없다고 한다. 야영 지역이나 취사 지역이 아닌 데서 천막을 치거나 불을 피우면 무서운 처벌을 받게 되고, 이런 교육은 어릴 때부터 철저해서 사람이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생각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좀 좋은 계곡,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계곡에는 반듯한 돌 치고 깨끗한 것이 없다고 한다. 하나같이 새까맣게 타 있는데, 모두 돌에다 고기를 구워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LA의 요새미티 국립공원에서 한국인 노파가 우리 나라에서처럼 흐르는 물에 비누 세수를 하다가 들켜, 큰 곤욕을 치르고도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는 것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선진국에서는 물 한 방울의 오염도 엄격히 법으로 다스리는데, 우리는 어째서 온 강산을 결딴내는 자연훼손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경관을 망치고, 깨끗한 물을 오염시키는 온갖 접객업소가 설마 이 법치국가에서 허가 없이 들어섰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국가가 우리의 금수강산을 이렇게 망치고 있다는 결론인데, 그것도 선거만 한번씩 치르고 나면 없던 대형 건물들이 이렇게 들어선다고 한다. 이런 부조리를 두고 개혁을 백 번 부르짖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이러고도 우리가 선진국을 꿈꿀 수 있겠는가.
한 10여년 전에도 다른 일로 이 일대를 지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자연 경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고 같은 곳을 지나던 나는 한숨밖에 쉴 수가 없었다. 이 강토를 우리 당대에 결딴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후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국가적인 개발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연이 마구 망가지는 것을 당국은 왜 묵과하고 있는가. 이는 또 하나의 우민화정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날 몇 번이고 혼자 중얼거렸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먹고 즐기기만 하는 먹자강산으로 변했구나! 먹고 즐기기만 하는 백성의 의식이 바로 뜨일 리 없는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가 하느님이 주신 존엄성과 고귀성을 버리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천박하게 변해가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먹고살기가 좀 좋아졌다고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해버려도 될까.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조차도 여행만 떠났다면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고, 남녀가 뒤엉켜 차안에서고 어디서고 흔들고 춤추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우리 풍조, 신앙인들의 성지순례의 풍습도 이러하거늘 외인들의 행태를 어찌 흉볼 수 있을까. 소돔과 고모라를 타락의 도시, 죄악의 도시라고 했던가. 그러나 먹자강산의 방방곡곡에 즐비한 모텔에서 나라 전체가 신판 소돔과 고모라로 변한 것을 보게 된다. 하느님의 무서운 벌을 받기 전에 우리 신앙인들만이라도 정신을 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서 이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일까. 대희년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지금까지 집필해주신 한국 평협 류덕희 회장, 한국외국어대 조규철 총장, 대구효가대 이정옥 교수, 시인 신달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부산 평협 이규정 회장, cck 사무차장 정병조 신부, 한국일보 상임고문 정달영씨, 이동진 대사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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