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종교든 종교는 그 고유의 교리나 의식(儀式)을 초월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곳으로는 가정도 있고, 학교도 있지마는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완전하게 가르치는 것이 종교다. 그래서 종교란 말을 글자의 뜻대로 풀이해 봐도 좥으뜸(宗)되는 가르침(敎)좦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신앙인의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사람다운 이들이 많아지고 세상이 정화되어야 하는 것이 바른 이치이다. 옛날에 비해 신앙인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는데도 세상은 왜 점점 더 나쁜 사람들로 넘치고 혼탁해져 가는가. 이것은 그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인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신앙인이 신앙인의 노릇을 잘 못하는 까닭은 신앙인의 생명인 영성이 녹슬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신앙인이라 해도 세상에 젖지 않을 수 없고, 오히려 세상에 잘 젖어 있어야 누룩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속에 산다고, 종교가 가르치고 권장하는 좋은 일은 하지 않고, 종교가 말리는 일에 빠져버리면 영성이 고갈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누룩의 기능은 커녕 외인들의 손가락질이나 받게 된다. 그러면 우리 가톨릭이 가르치고 권장하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 수계신자 치고 이를 모를 사람이 있을까마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무심히 여기는 것을 들면 「신앙인의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우리 역사와 사회의 변천에 신앙인이 각자에게 주어진 책무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해서 역사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사회야 죽이 끓든 밥이 끓든 내 알바 아니다, 우리 시대가 온통 부정부패로 얼룩져도 내 일이 아니다, 윤리와 도덕이 실종되고 세상 천지 믿을 곳이 없어도 나와는 상관없다…. 이러면서도 나는 착실한 신앙인이므로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만 하겠다…. 이것은 신앙인의 참 모습이 아니다. 왜 신앙인의 참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거울로 삼고, 예수님을 최고의 스승으로 모시면서 예수님을 닮아, 그 분을 증거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현실 안주자, 현실 도피자가 아닌 현실 개혁자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현실 개혁자이신 것은 신약성서의 여러 곳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무시하거나 짓밟는 세력, 혹은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에 위배되는 사회적 관습에 대하여 과감히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인의 현실참여요 발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한 발언마저 신앙인답지 못하다고 하면서 기도만 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일부 신앙인들이 정치 권력과 밀착되어 오랜 세월 평신도들을 잘못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평신도들은 순교선열들께서 물려주신 고귀한 정신마저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불의에 항거하는 기백이 위험시된 채 오늘에 이르렀지만 지금 그런 책임을 묻고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속히 우리 신앙인들은 옛날 순교선열들의 정신과 기백을 되살려야 한다. 순교 선열들께서는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예수님을 증거하신 분들이 아닌가. 그런 선열들의 후예인 우리가 왜 교회 안에서조차 자기 이익이나 따지면서, 하느님의 뜻과 정의가 짓밟히는 현실의 여러가지 일에는 눈이 멀어 버렸는지 안타깝다. 오늘날에는 박해시대 순교자들께서 당하셨던 그런 순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기백과 정신만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왜나하면 당시에는 오직 무지에 의해 하느님의 정의가 짓밟혔지만 오늘날에는 수많은 지적 세력들이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알고 있으면서도 단지 자신들의 이익, 자신들의 세력 확장에 장애가 된다고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짓밟고 무시하려고 드는 것이다.
이들과 맞서 우리의 생명인 종교를 제대로 지켜내고 이를 온 세상에 펴내기 위하여 과연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인가. 지금처럼 세속의 온갖 부정적인 유혹의 손길에 한눈을 팔면서 우리의 녹슨 영성을 그대로 두고, 습관같은 신앙행위를 되풀이할 것인가.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이겨내는 견고한 의지와 신심, 스스로를 더 쇄신하는 영성의 성장이 없고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천주교인들의 가장 큰 약점은 사회적 책임에 둔감한 것이다. 우리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기능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신앙인들이 권력 앞에 너무 약하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해 온 까닭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영성다운 영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오늘의 우리 현실이 바른 역사의 궤도 위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의에 봉사하고,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역사의 파수꾼 내지 시대의 증거자로 살아야 한다. 우리 종교계에 깊숙이 침투한 황금만능주의와 호화사치 풍조를 청산하고, 인간의 정신적 가치의 고양에 있는 힘을 다 쏟아야 한다. 사회의 온갖 비리와 불의를 보고서도 못 본 척하고 기도만 하는 것은 결코 이 시대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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