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첫 달인 1월 한달 동안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86명의 새 사제가 탄생하였다. 또 2월에도 여러 명의 부제들이 사제로 서품될 예정이다. 이 새 사제들은 새 천년을 열어갈 사람들이기에 그들에게 특별한 기대를 갖게 된다. 그 기대란 좀더 사제 본연 의 자세에 충실하라는 것, 즉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오롯하게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아끼는 착한 목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착한 목자로서의 사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을 도로 표지판에 비유해서 생각해 본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잘 아는 길에 있는 도로 표지판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다. 그러나 낯선 길을 갈 때에는 도로 표지판이 큰 도움이 된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방향 표지판의 역할을 한 분들, 이를테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밖에 존경하는 분들이있다. 인생에서만이 아니라 신앙 생활에서도 방향 표지판이 있다. 물론 우리 신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고 영원한 표지판이다.
하지만 그분을 각 시대와 상황에 맞게 드러내주는 작은 표지판들도 필요하다.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사제가 바로 이런 작은 표지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첫째, 도로 표지판은 굳건히 땅에 박혀있어야 한다. 신앙의 표지판이 될 사제는 기도 를 통해서 교회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성적으로 깊이 뿌리를 두어야 한다. 만일 사제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땅에 깊이 뿌리를 두지 못한다면, 세찬 비바람을 이기지 못해서 표지판이 넘어지는 것처럼 세파에 시달려 쓰러지고 말 것이다.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은 베드로 사도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하는 잘못을 범할 정도로 세상의 저항은 거세다. 그러므로 사제는 무엇보다도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홀 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닮아야 할 것이다.
둘째, 도로 표지판은 운전자가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위와는 구별되는 장소에 세워지고 뚜렷한 색깔로 표시된다. 이와 유사하게 성직자는 일반 사람과는 다른 방식의 삶, 즉 복음 삼덕의 삶을 살아간다. 사제는 순종, 청빈, 독신의 삶을 통해서 자 신의 능력과 돈 그리고 성을 우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노예가 되는 현대인들에게 진 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표지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도로 표지판의 근본적인 역할은 방향 제시이다. 사제 역시 신자들에게 신앙인이가야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는 우선적으로 말씀 선포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 이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성서를 연구하고 묵상하는 동시에 사회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세상사를 해석하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말씀 선포를 통해서 신앙인의 길을 제시하는 사제는 특히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기도와 묵상,공부를 통해서 잘 준비되어 정신을 일깨워주고 마음을 적셔주는 강론은 신자들에게 일주일을 살아갈 풍요로운 영적 음식이 된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항상 자기 가족에게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식탁에서 가족들이 누리는 기쁨을 보면서 그동안의 수고를 잊고 자신도 기쁨에 충만하게 된다. 이런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사제도 신자들에게 좋은 영적 양식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 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 양식을 먹고 힘을 얻는 신자들의 모습은 수고를 잊게 하고 사제직을 보람과 기쁨으로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넷째, 도로 표지판은 단지 목적지를 가리키는 도구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비유로 말 하자면, 표지판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일뿐 달 자체는 아니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도구일 뿐 그리스도 자신은 아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자신 에게 집중되고 머물기를 바래서는 안 된다.
사제는 주인이 아니라 일꾼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을 다하고서 『저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가 17,10)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자들이 언제나 무조건 자신을 떠받들어주기를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는 사제는 자기 분수를 모르는 문제사제라고 하겠다. 이런 사제는 복잡하게 그려져서 방향 제시는커녕 혼란만 가중시키는 잘못된 도로 표지판과 같다.
현대와 같이 불신과 유혹이 늘어가는 험한 세상에서 신앙의 표지판이 된다는 것은 힘 겹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힘겹고 어려운 만큼 보람도 크고 많다.
보통이 아닌 역할은 보통을 넘는 수고를 요구하지만, 또한 보통을 넘는 특별한 보람과기쁨을 준다. 모쪼록 즈믄동이 새 사제들이 착한 목자로서의 사제직을 보람과 기쁨 속에서 수행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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