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바라보는 공터는 잡초와 잡목으로 채워진 보잘 것 없는 땅이었지만 집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 너머 밤나무 숲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볼 때마다 나에게 휴식감을 주었었다.
기껏해야 망초꽃이나 자랄 수 있는 땅이었지만 빈 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아파트에 살 때에도 부엌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공터가 있어서 바라다만 보아도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내가 보기를 즐기던 공터들은 빌딩이나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섰고, 다시는 그런 나만의 사치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임시였겠지만 옹기를 팔던 공터가 올려다보기도 힘든 고층빌딩이 된 걸 보면 요술 같기도 하다.
이태 전 경기도에 집을 지어 이사를 와서도 거실에서 보이는 공터가 내 땅은 아니지만 내가 즐길 수 있으니까 나의 소유라고 생각했었었다. 그런데 웬걸 나의 사치는 2년도 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향도 좋지 못하고 낮은 땅이라 집이 들어서기에 알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놓더니 아니나 다를까 개울의 축대까지 허물고 바짝 붙여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개울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아끼는 거라고 시청에 진정서를 넣어 보았지만 이미 건축하가가 난 땅이라고 개인의 재산권을 마음대로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여름이면 가재도 잡고 물장난을 치던 개울과 멍청히 바라보던 공터는 공사장으로 바뀌었고, 작은 평화와 사치도 무너졌다. 공사를 얼마나 크게 벌이는지 콘테이너 박스 현장 사무소까지 생기니 얼마나 크고 높은 집이 올라갈지 몰라 조마조마하기까지 하다.
바라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집 옆에는 수년째 집을 짓지 않고 방치해놓은 공터가 또 한 필지 있다. 무슨 연유인지 집을 짓지 않고 땅주인도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으니 빈 땅은 늘 쓰레기가 널려져 보기 흉했었다.
쓰레기는 한번 버리면 연쇄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쓰레기 봉투를 사기 아까워하는 얌체족들이 내다 버리는 쓰레기는 종류도 다양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올봄엔 이웃끼리 밭을 갈아보기로 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돌멩이를 줍고 땅을 갈아 비료를 주어 제법 여러 이랑을 만들어 놓으니 텃밭이 생긴 것 같았다. 도시 사람들은 일부러 멀리 가서 주말농장도 가꾼다는데 웬떡인가 싶게 흐뭇해서 공사판 소음 때문에 속상한 마음도 잊을 것 같았다.
밭을 갈아 상추나 고추, 가지같은 채소 모종을 심어 놓으니 아무도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 좋았다. 그래서 무엇이든 가꾼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몸매도 가꾸면 건강해지고 얼굴도 가꾸면 예뻐지고 마음을 가꾸면 정돈이 된다.
이웃들도 점점 욕심을 내어 여러 종류의 채소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리니 신이 났다. 언제 땅 주인이 나타나 집을 짓는다고 갈아 엎어질 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라도 정돈된 밭이랑을 보는 재미가 좋다.
오늘은 동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나와 둘러보며 가장자리에 푸릇푸릇 올라오는 답싸리를 보여주며 나중에 빗자루를 만들라고 하신다. 요즘은 싸리빗자루를 볼 수 없었는데 눈 온 다음날 싸리 빗자루 자국은 얼마나 신선하고 정갈한가. 올 겨울엔 빗자루도 맬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다 우리 집 담 밖의 얘기고 담 안에도 마당이 꽤 된다. 잔디도 있고 꽃밭도 있다. 꽃밭에선 지금 붓꽃과 마가렛이 피려하고, 옥잠화, 접시꽃, 한련, 채송화, 봉숭아, 금잔화가 한참 자라고 있다.
이사오던 해엔 그런 것들을 사다가 심기도 하고 동네에서 모종도 얻어다가 심었는데 올핸 안 심어도 저절로 다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팥 나듯이 작년에 꽃 피던 자리에 엄청나게 많은 자기 손을 퍼뜨려 놓아, 솎아주거나 뿌리 나누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잔디 사이에 숨어있는 클로버도 미안하지만 뽑아내야 한다.
자연히 아침에 눈만 뜨면 밖에서 흙 만지는 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흙처럼 고맙고 신기한 게 또 있을까.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채송화씨도 흙만 만나면 싹트고 꽃을 피운다.
똑같은 흙에서도 어떤 것은 노란 물을 길어올리고 어떤 놈은 빨간 물을 길어올린다. 옆의 해바라기가 있어도 결코 키 큰 걸 부러워하지 않는다.
작은 미물들도 창조의 뜻을 열심히 산다. 인간 또한 아무리 뛰고 몸부림쳐도 다 하느님 손바닥 안에서 일이라는 건, 체념이 아니라 평화다. 엎드려서 일하다 허리를 펴면 바로 동산이 보인다. 5월의 동산은 몽실몽실 피어나는 신록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창세기 말씀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가슴을 울렁거릴 수 있는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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