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동 골짝은 손선지 한재권 등 병인순교 성인들이 숨어사시던 옛교우촌 터이다. 말 그대로의 심심산골로 산구비를 열번쯤 돌아야했다. 한구비를 돌면 앞 뒤로 모두 길이 안보이는 첩첩산중에는 아직 마을이 남아있고 초입에는 약사암산제당 이라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임복만 신부님 부친이 출생한 집인데 교구에서 확보를 못했어요. 왜정때 간도로 가셨다가 해방후 중국의 무정부혼란상태를 겪고 54년에 반혁명분자로 체포당해 옥고치르고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50년만에 돌아오셔서 1년여만인 94년 1월에 86세로 선종하셨죠.
현대공권력의 순교자 신부님인데, 성지동 골짜기를 지키듯 초입에 남아있는 저 생가를 볼때마다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어요』
진소신부님의 설명에 여러그루 남아있는 감나무들도 숙연해하는 듯 싶었다. 골짝 뒤켠 산정은 포졸들이 잡으러오면 곧 재를 넘어 도망칠 수 있는 지형이었다.
그렇게 고요하고 적막할 수가 없었다. 하느님의 숨소리가 들려올듯 싶었다. 투명한 하늘은 손바닥만했지만 하느님 얼굴이 보일만큼 푸르고 깊었다.
어쩌면 우리 신앙선조들은 그 궁벽한 산속에서 하늘소리를 들은 것이 아닐까?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하면서 빼곰하게 보이는 하느님 얼굴에서 그 의연한 신앙을 배우지 않았을까? 그렇지않고서야 어찌 그 척박한 산골에서 호의호식이 보장되는 배교의 길을 거부하고 목숨을 내놓았을까?
땅에 달라붙듯 돋아난 복수초가 「신앙은 뼈아픈 가난도 이념도 초월하는 것이야」라며 속삭이는 그곳은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도 기도로 살고 있었다. 덥다고 기도에 게으르고, 바쁘다고 이웃을 외면하는 내가 과연 그분들의 후손인 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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