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부대에서 맹독성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를 몰래 하수구에 버려 한강으로 흘려 버린 것이 들통이 나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발뺌하며 오리발 내밀더니 나중에는 여군장교를 내세워 환경에 아무 피해가 없게 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에서 보여주고 있는 미군측의 일련의 태도가 우리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자존심이란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도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그보다 더한 독극물들을 매일같이 아무 거리낌없이 버리고 있으면서 우리가 한번, 그것도 나름대로 「조치」를 취해서 버린 것 갖고 그렇게 아우성이냐 라는 투정이 깔려 있는 듯이 보인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홀에서는 우리 모두 긴장하여 휴지를 함부로 아무데나 버리지 못한다. 법과 질서가 엄격하게 지켜지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매우 조심하게 된다.
미군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독일과 같이 환경문제에 철저하여 시민들의 관심이 높고 정부측에서의 제재도 엄격한 나라에서는 감히 그런 무단방류를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아무데나 휴지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나라에서는 외국인들도 그 분위기에 맞추어 처신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과거 선조들은 이 땅위에서의 생활을 「살림살이」라고 보았다. 작게는 집안 살림살이에서부터 크게는 나라 살림살이, 더 크게는 지구 살림살이를 염려하며 「살림」(살게 함)을 생활화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후손이라는 우리는 약은 체는 다 하지만 실은 부엌과 뒷간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철부지처럼 처신하고 있지 않는가. 장마가 지면 길에 나 다니는 벌레가 많기에 그 벌레들을 밟아 죽게 할까봐 오합혜(五合鞋)라는 느슨하게 삼은 짚신을 신고 나들이했던 우리 선조다.
살림살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우리를 살려주고 있는 무생물도 식물도 동물도 모두 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함께 더불어 사는 「살림」을 생활해 나가는 「살이」아닌가?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 할머니들의 부엌 살림살이를 보아라. 알뜰살뜰 살림을 생활화한, 물건의 낭비나 환경오염 또는 파괴의 꼬투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살림」살이 그 자체 아니었던가. 조상들의 그런 살림살이를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 생활화한다면 그것이 바로 아주 훌륭한 「생태학」아니겠는가.
「생태학」이라는 것이 뭐 별 것인가. 그 뜻이 「살림살이 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에게는 분명 아주 훌륭한 살림살이의 정신과 자세가 있었다.
우리말 「사람」에도 그러한 살림살이의 세계관이 깔려 있다. 「사람」은 「사름」에서 나왔고 그것이 「삶」으로 변했고 거기에서 「사람」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피적 말놀이일 뿐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그 깊숙이에 깔려 있는 세계관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이 다른 식물이나 동물처럼 그저 살기만 한다면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은, 그가 사는 법을 알고 살리는 법도 아는 존재라는 거기에 있다.
사름, 삶, 살림을 아는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의 삶과 살림을 도맡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런 존재를 「삶+앎」이라고,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국토를 쓰레기통으로 대했기에 미군들도 덩달아 이 땅을 쓰레기통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삶의 방식은 그렇지 않았다. 내 차 하나 깨끗하면 그만이라고 밖으로 담배꽁초 집어던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 집안만 깨끗하면 된다고 내 집 쓰레기를 남의 밭에도 갖다 버리는 그런 몰염치한 인간이 아니었다. 우리 국토만 오염 안 되면 좋다고 산업폐기물을 다른 나라로 수출할 그런 생각이 좁은 사람들이 아니다.
하늘과 땅 아래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하늘의 명을 받아 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며 그 생명체들의 살림에 관심을 쏟으며 살림살이를 자신의 일로 여기며 살아온 진정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사글세를 내며 잠시 이 땅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무궁히 이어질 다음 세대를 위해 이 땅을 깨끗하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땅 주인인 하느님으로부터 땅 사용에 대해 책임추궁을 당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 미군이 잠시 이 땅에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듯이 결국 우리도 잠시 이 지구 위에 살다가 하느님의 품속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우리 편의만을 위해 하느님의 땅, 후손들의 땅을 마구잡이로 파헤쳐 쓰레기통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림을 잘 꾸려나가 오래오래 쫓겨나지 않으며 살아야 되는지를 염려해야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