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갑작스런 복통으로 아버지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달려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딸을 업고 병원으로 달렸고, 나는 산처럼 거대한 아버지 등에서 가슴을 조였었다. 복통은 얼마 후 사라졌으나,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공연히 아픈 주사만 한 대 맞고 다시 업혀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때 내 아픈 배를 낫게 해준 것은 분명 주사 한 대가 아니라 아버지의 따스한 등이었다. 병원에서 소임을 하고 있는 나는 국가적 재난인 의료대란 그 한가운데 서 있다. 병원의 경영 위기와 의사들의 외로운 투쟁 그리고 누군가의 등에 업혀 달려오는 환자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이들의 절박함을 지켜보면서, 가톨릭 병원의 이념인 치유자 이신 하느님의 선포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진한 아픔으로 느끼게 된다.
혹여 의료대란은 그 동안 나라가, 사회가, 우리 자신이 만사를 선으로 이끌지 못함으로 인해 생겨난 파괴적인 요소들에 휘둘리는 현상이 아닐까? 진정한 대화는 마음 깊은데서 울려나오는 공명음, 사람끼리 서로 맞부딪치는 가운데 내면에서 저절로 문을 열고 걸어나오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부도 사회도 현재 이 자리에 있는 나도 위장된 어두움과 파괴의 언어가 아닌 진정한 가슴의 언어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환자를 치유해야 할 병원과 의사, 이들이 이 시대의 열병을 앓고 있다. 사회가 힘을 합하여 이 열병을 사랑과 이해의 손길로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몸이 아프면 정신이 아프고 정신이 아프면 몸이 아픈 법이다. 이 시대를 몸과 마음으로 앓고 있는 환자와 의사 그리고 사회 모두가 치유자이신 하느님의 거대한 등에 업히어 치유받고, 소나무 향기 같은 평화 누리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