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산소에 앞서 다녀간 조카아이가 써 놓은 편지를 읽었다. 『보고싶은 할아버지 저 세상에서는 오래 사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만나실 수 있지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어린 마음이 기특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유난히 외로움을 타시던 분, 회유의 본성이 심하게 작용하여 가슴앓이 하시던 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내 아버지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새우, 은어, 연어들은 회유성 물고기이다. 어미가 알을 낳고 죽어간 터전이 그들의 고향이 되어 사투를 벌이며 다시 회유하고 그리고 알을 낳고 죽는다.
우리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이다. 추석명절이 되면 우리는 긴 회유의 길을, 혼잡과 고달픔의 틈새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의 긴 이동을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모여든 우리는 자신의 모태를 향하여 절하고 감사의 축제를 지내며 구수한 고향의 언어로 기쁨을 나눈다.
하늘과 땅의 수고에 감사하고 죽은 자들조차 초대하여 잔치를 벌리고 과거의 음성을 듣는 때이다. 이렇게 부모와 형제와 이웃과 나의 형상과 비슷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 어울리는 시간이다. 우리 안에 숨겨진 근원적인 우주의 기운을 감지하며 하나의 숨이 되어 호흡을 함께 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직도 고향이 그리운 이들은 사물놀이 곡이라도 들으며 회유의 본능을 달랜다.
비전향 장기수 북한 행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념이나 어떤 체제가 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된다. 고령의 나이에 북행을 결행하는 이들도 역시 내 아버지들임을 알 수 있다.
때가 되면 회유하는 연어처럼 고향이 부르는 바람소리, 물소리를 매일 들으며 울었을 것이다. 제사도 사이버 시대라는 구절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가을 명절에는 회유의 본성을 감추지 말고 고향처럼 그리운 아버지를 뵈러 산소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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