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인데, 시각 장애인들 모임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함께 하는 등 하루를 함께 보낸 경험이 있었다. 맹인들이 식사를 할 때는 숟가락을 입에 넣고 먹으면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지 몰라도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우선 앞을 못 보니 무슨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고 매번 숟가락, 젓가락 끝에 신경을 모으고 더듬거리고 입에 가져가지만 정확하게 집어넣기도 힘들 뿐 아니라 여기저기 묻히고 흘리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그들이 이동하고 행동하는데 따르는 어려움 등 일거수 일투족에 따르는 모든 어려움들을 정상인으로서 어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을 보고 『더러운 세상 꼴 보지 않고 차라리 눈감고 사는 그들이 더 편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그들을 놀리는 말에 불과하다.
그 체험을 하던 날 유난히 기억에 남아서 뜨거운 그 무엇을 치밀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봉사자들의 모습, 당일의 행사자체도 물론 그들 봉사자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지만 모두가 자원봉사자인 그들은 벌써 상당기간 장애인 들과 삶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 봉사자 들로 하여금 장애인들 곁에 머물게 하며 같이 부축 하여 걸음을 걷고 설명해주고 거들어주며 자기 생활을 내놓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승화된 사랑 때문이리라.
한 달 전쯤에는 현재 필자가 수강하고 있는 서강대 경영대학원의 S-Camp 하계방학 봉사활동으로 서울 시립 아동 병원에 1일 봉사를 다녀온 바 있다. 1일 봉사라고는 하지만 오전 11시부터 불과 몇 시간 그 곳에 머무는 일이었는데도 마음의 무거운 짐은 아직도 나의 뇌리 한 구석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다. 그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는 환자들은 뇌성장애에 의한 기형아들이 대부분이고 신체 발육 부진, 정신 박약, 지능 저하 자들이며 대다수가 중증장애이고 버려진 아이들이다. 27살이 되었어도 머리만 수박 만큼 커다랗게 부풀고 몸통과 사지는 어린아이처럼 작은 OO, 날 때부터 두 눈알이 없어서 머리를 벽에 기대고 있거나 무엇이 답답한지 계속 고개를 끄덕 이며 앉아 있는 5살 박이 OO, 날 때부터 아예 손목이 없는 OO…. 어느 장애인 시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곳 시립 아동 병원도 직원 외의 많은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아니 200명이 넘는 직원들 모두가 봉사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원들 중 에는 근무시간 외에도 별도의 봉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배정 받은 곳은 다운증후군에 의한 기형아들의 방이었는데 전담 간호사들 외에도 7, 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조용하고도 익숙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긴 아이들이 즐비하게 누워있는 모습에 난생 처음 그러한 봉사 활동을 하는 극초심자가 가지는 긴장과 어줍지 않은 감상적 측은지심과는 관계없이 봉사자들의 모습은 차라리 기계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무표정한 기계적 행동에 진지함과 연민의 정이 가득 들어있다는 사실은 곧 드러났다. 놀라운 것은 장애 어린이들에게 모두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을 부르며, 그들의 유일한 의사표시인 칭얼거림과 작은 몸짓 그리고 표정들을 익히 알고 대처한다는 점이었다. 하루 세끼 안아서 죽 먹이고, 닦아주고, 약 먹이고, 목욕시키고, 기저귀 갈아 채우고, 옷 갈아 입히고, 재우고…. 하루 온종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거두어주는 그들은 참으로 두 몫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무엇이 그들을 이 대책 없는 아이들 곁에 머물도록 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승화된 사랑 때문이리라. 그들은 그 일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더욱 인간다운 인간으로 가꾸고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는 유다인만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게이와 레즈비언을 학살했다. 또 장애인 20만 명을 학살했고, 그 이전에 이미 40만명의 장애인 들에게 강제 불임수술을 시켰다. 이는 바로 사회가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통해 이뤄진 폭력이었다』(인터넷 한겨레.9909 독자칼럼).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정상인들의 생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태아에서부터 노인들에게까지 그리고 모든 기형, 식물인간, 장애인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명은 그들의 정신적, 신체적 기능과 실용성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존귀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결국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그러한 의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할 때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단순히 동정심이 아닌 나와 더불어 삶을 함께 나눌, 즉 내가 반드시 돌보아 주어야 될 형제로서 다시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인인 내가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고 내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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