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새벽에 눈 뜬 사람들만이 볼 수 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2천년 대희년 … 「민족 화합의 새날 새삶 전국 기도회」가 열린 월정리의 6월 25일, 만 하루 동안 비를 참아준 새벽 5시경, 하느님의 고마운 마음을 전해받는 밝아오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말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그 시간, 민족 화합의 새날 새삶을 기원하는 미사는 장익 주교님의 강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어둡고 먼 밤길을 기도하면서 이곳 월정리까지 온 것은 밝아오는 평화와 통일의 새날을 향해 기구 하려고 여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그 자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이에 많은 준비기도를 하였고 또 밤샘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였다.
그래서였을까. 이 자리에 함께 하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미사가 끝나가는 시각, 새벽하늘과 밤샘한 사람들을 바라 보시며『인상적이었고,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뜻깊은 밤이었다』고 소감을 밝히셨다. 그렇다.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새벽에 눈 뜬「한사람 곁에 한사람」들이 많아질 때 통일과 평화의 새벽길이 열릴 것이다. 평화의 새벽길은 미움과 다툼으로 총칼을 손에 든 모습 으로는 절대 아니다.『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이사 2, 4) 성서의 평화정신이 구현 되는 구체적 노력이 있어야한다.
이런 정신과 노력의 상징으로 월정리에서 6월 25일 새벽 4시에 울린「평화의 종」은 6.25 전쟁 당시 사용된 총알과 포탄의 탄피 일부를 녹여 넣어 만들었다. 또한 참석 신자들이 목에 건「하나되게 하소서」(요한 17, 11) 성구가 새겨진 평화의 종 모양의 목걸이도 그렇게 녹여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평화의 종을 울리며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의 「6.25 전쟁 발발시간」을 50년 후「평화의 시간」으로 선포하며 미사를 드렸다. 그래서였을까. 8.15 남북정상회담과 선언으로 시작된 남북의 평화 교류와 협력의 물꼬는 국방장관 회담으로까지 이어졌다.
통일의 새벽길은 무게로 달아서 중심잡는 상호주의, 또는 주고받는 거래관계로서의 상호주의로도 물론 아니다. 그 길은 내 형편이 좋든 좋지 않든, 아니 어려울 때일수록 방 한칸 내어놓고 잠을 같이 자는, 한솥밥 한식구로 밥상에 함께 앉는 그렇게「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의 우리 모습이 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옛부터 밥상에서 사랑과 정을 나눠왔고 예절을 배웠다. 밥상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나눠 먹을 때 한식구로 인정되었다. 춘천교구에서 1997년 북녘동포 돕기운동을「한솥밥 한식구」운동이라 이름붙인 것도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겨레는 한솥밥 한식구 공동체라는 의식과 또한 통일감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사실 분단된 나라를 내 한몸의 크기로 느끼게하고, 갈라진 겨레, 굶주리는 북녘동포를 내몸 전체로 느끼게 하는, 통일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이 있었는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하나 뿐이었다. 어쩌면 춘천교구가 통일기원과 북녘동포 돕기를 위해 늘 몸에 지닐 수 있는 한솥밥 한식구 손수건을 만든 것은 이런 의미에서 깊게 음미해볼 일이다. 한집안 식구들이 밥상에 빙 둘러앉은 모양으로도 보이고, 솥뚜껑을 엎어놓은 모양으로도 보이는「한솥밥 한식구」글씨가 둥글게 새겨진 이 손수건은 통일되는 그날까지는 일터 에서 흘리는 땀을 닦고, 통일되는 그날 우리 얼싸안고 울 때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겠는가.
나는「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도 좋아하지만 양희은의「한사람」노래도 좋아한다. 제목은 한사람이지만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이 있는 함께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한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먼 훗날 위해 내미는 손/ 둘이 서로 마주잡고 웃네/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 둘이 좋아해/ 긴 세월 지나 마주앉아 지난 일들 얘기 하며 웃네.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들이 모여 기도했던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현재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월정리역의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철마가 달리고 싶듯이 우리는 만나고 싶고 하나되고 싶다 . 그렇다. 평화와 통일의 새벽은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마태 5, 9), 즉 방한칸 내어놓은, 한식구로 밥상에 마주앉은 사람들에 의해 열릴 것이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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