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관리직 종사자가 자녀를 서울대에 보낼 가능성은 생산직 노동자의 30배가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울 지역 출신 학생이 서울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중소도시 이하 출신자의 4배가 넘는다. 특히 이들 서울대 진학 서울출신중 절반이상이 부유층의 대명사처럼 되고있는 강남8학군 출신이다」
이게 어느나라의 통계인가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지만 이는 분명 2000년 한국의 상황이다. 최근 서울대 학생생활 연구소가 공개한 「2000학년도 신입생 특성조사 보고서」를 분석한 이번 결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 사회구조의 왜곡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조사결과 나타난 문제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그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선 2000학년도 서울대 신입생들의 아버지 직업중 전문직은 23.2%를 차지했다. 전문직은 보통 의사 약사 변호사 판사 회계사 대학교수 등으로 통칭되는 사회 지도층이다. 그리고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중 전문직의 비중은 최상위 인기학과로 갈수록 더욱 높아진다.
의예과의 경우 신입생 아버지의 전문직 비율은 35.8%, 상당한 입시레슨비가 필요한 음대의 경우 34.8%다. 이는 전국 남성 직업분포도에 따른 전문직 직업비율(5.5%)보다 6∼7배나 높은 수치다. 관리직의 경우는 더욱 그 간극이 벌어진다.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 중에서 26.6%로 집계된 관리직은 단과대별로 경영대(35.0%), 의예과(34.9%), 약대(34.9%), 음대(38.4%)등으로 드러났다. 이는 남성직업 분포도에 따른 관리직 비율(3.6%)과 비교할 때 무려 10배까지 많은 것이다.
이러니 계층의식의 차이 또한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서울대 학생들의 하류층 귀속의식이 전국의 16분의 1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출신지역 문제 역시 큰 문제로 등장 하고 있다. 신입생들의 출신지역(주성장지역)중 서울지역이 45.2%를 차지했다. 이는 전국 고교졸업자중 서울지역 비율 (22.9%)의 2배 가량이다.
특히 의예과 신입생의 서울지역 출신자 비율은 63.1%에 이르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지역에서도 강남북의 편차가 서울과 지방차 못지않게 크기 때문이다.
이제 집안은 가난해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있을 수 없게된 것이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3학년 때까지 모두 3억원의 과외비가 든다는 계산도 있다. 이렇듯 부모의 지원에 따라 학업성적과 학교생활의 우열관계가 좌우되도록 교육제도도 변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각종 활동에 어머니의 역할이 요구되고 그 영향은 자녀들의 성적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는게 일선 교사들의 설명이다. 특히 부모의 영향력은 갈수록 더 커진다. 중학생이 되면 내신성적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수행평가의 과제물이 늘어나면서 부모나 학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 성적차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교에서는 어떤 과외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이 결정적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항상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 과외를 받은 일 없다』고 말하는 성적 우수자들의 이야기를 믿는 학생들은 없다.
그리고 그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90년대 초에는 국민총생산 대비 1.7%였던 과외비가 98년에는 3.1%(13조2000억원) 로 늘었다는 교육개발원의 조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되다보니 앞으로는 「권력있고 돈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하면 좋은 대학에도 못간다」는 얘기가 나오게된 셈이다.
좋은 대학의 인기학과 졸업장이 미래를 보장하는 사회에서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내고싶은게 어떤 부모나 갖기마련인 욕망이다. 문제는 그런 기회가 아낌없이 과외비를 쓸 수 있고 배경있는 집안의 자녀들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입시제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선 성공사례를 사회의 모범으로 여겨왔다. 집안이 어려워도 공부를 잘할 수 있고 공부를 잘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아래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디어온 것이다.
그러나 돈과 권력있는 부모를 두지않으면 명문대학도 가기 어려운 인식이 보편화된다면 과연 이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신은 물론 자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권력을 움켜쥐는게 미덕이 될 것이고 그같은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회가 분열로 치닫고 있는 이유의 근본적인 배경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점차 벌어지고 있는 빈부차, 노사갈등, 이익집단들 사이의 대립, 그리고 부정부패등 사회해체의 요소들이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는게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에서의 「독점현상」은 방치할 수 없는 시급한 문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