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두드러지면서 우리는 지금 심각한 내부 분열의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의 대북 접근을 위한 일방적인 양보를 보고 대한민국 존립의 위기로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냉전주의자 수구세력 통일 반대론자로 몰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통일에 앞서 남한 내의 의견 통일을 이루는 것이 오히려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국론 분열의 위기
이같은 분열은 우리가 근대 국가를 형성하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는데 성공하게 한 개발 연대에서 이미 싹이 배태되어 왔던 것 같다. 요즈음은 흔히 개발 독재라 호칭하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없으니까 서구식 민주주의가 보장하고 있는 인권이나 자유, 기회의 균등이나 가치의 상대성 같은 것은 모두 뒤로 미루고 오로지 경제의 건설에만 몰두했다.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쌓는데만 온 국민이 매달려 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고 무시됐던 계층 혹은 지역, 분야가 있을 수 있었고 개발 주도세력과 이들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딱지 같은 초가에서 태어나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입신하여 근대식 주택에서 살면서 여가에는 골프를 즐기고 해외 여행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게 됐을 때 겪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 같은 것으로 오늘의 분열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이 같은 계층이 특정 소수 계층이 아니라 지난날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빈곤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사회를 주도하게 되면서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갈등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대체로 은퇴했거나 생물학적 생명이 끝나가는 6.25 참전 세대, 개발 연대에 주도적으로든 혹은 피동적 참여자 로든 참여했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변하고 있는게 아닌가. 북의 남침 위협은 여전한데 경의선 개통은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이산 가족의 상봉 까지도 북에 내줄 것은 다 내주고 국민 감정을 호도하기 위한 최루성 선심 공세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한다.
이에 대해 통일론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북을 개방으로 이끌어낼 수 없다, 식량 원조는 인도적인 문제이니 정치적인 고려가 필요 없다, 심지어는 "이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으니 미군의 주둔은 필요 없는게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립되는 두 주장 모두가 일리가 있다. 북이 적화통일 야욕을 포기한게 아니라면 정부의 서두르는 자세는 대한민국의 존립이 걸린 문제가 되고 북이 정말 변화하고 있다면 의심만 하고 있다가 호기를 놓치는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의견 대립이 양쪽이 믿고 있는 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큰일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우리 민족이 겪은 이념의 대립 사례들은 유혈로 얼룩졌고 가장 가까운 예가 6.25 한국 동란이 아닌가.
위선의 탈을 벗자
마태오 복음 7장에 좬왜 당신은 형제 눈 속의 티는 보면서도 당신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합니까? 이 위선자, 먼저 당신 눈에서 들보를 빼내시오. 지금 우리 모두가 예수께서 지적하신 위선자가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 출신 지역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믿고 있는 바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형제의 눈에서 티만을 찾고 자신의 눈의 들보는 잊고 있는게 아닐까.
『저 자들은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야합한 자들이다. 6.25 때 저항을 하지 않았으면 오늘의 후손들은 통일된 국가를 가지고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는 자기 눈의 들보를 치우지 않으면 오늘의 남북 화해를 냉정하게 보지 못한다. 거꾸로 『오늘의 남북 화해를 의심하는 것은 독재 정권과 야합했던 기득권 세력이다. 저들이 타도되지 않으면 우리의 염원인 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들보를 가진 채 남북대화를 추진한다면 우리의 역량은 반 이상 감소 되고 대북 교섭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잃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냉소로 해결될 일은 없다
20세기가 저물고 21세기가 눈 앞에 다가왔다. 도약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역사를 도약한게 우리 한민족이다. 우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기에 오늘의 남북화해도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면 개발 연대의 당사자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발연대에는 무시됐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됐던 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도 됐다. 역사 도약에는 대가가 지불돼야 한다고 한다. 대가를 지불하는 노력으로 자기 눈의 들보를 없애는 일에 모두가 참여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돌아서서 냉소하거나 불만만을 이야기하고 있기에는 민족의 통일이란 너무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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