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본당들도 사정은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우리 본당 역시 잘 안돼서 속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반모임(혹은 소공동체)이다. 그것만 잘 되면 매사에 도무지 어려운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게 영 쉽지가 않다. 나는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꼼꼼하게 분석해 보았다. 틀림없이 있었다. 잘 안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몇가지 잡히더라는 말이다.
요즈음 우리 본당 신자가정의 '늙지 않은' 부부들은 거의가 다 맞벌이를 한다는 게 그 첫 번째다. 그것도 전문직에 종사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 노동이나 영세 상업이 대부분이니 시간 외 근무가 연일 계속되고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여유있는 저녁 시간이란 오직 희망 사항일 뿐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제외하고 활동 가능한 신자들 중에서 구역장이나 반장직을 맡을만한 사람은 가뭄에 콩처럼 드물고 반원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반모임에 꼭 참석하라고 권하기조차 미안스러운 지경이다. 그런가 하면 구역장이나 반장은 갖은 핑계를 다 대면서 끝끝내 안 하려고 버티면서도 동네 통장은 서로 먼저 하려고 나서는 신자들이 간혹 있다.
통장을 하면 적지 않은 혜택이 있으니까 그렇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신자들을 보면 얄밉기 짝이없다(우리도 그래야 할까? 가령 구역장이나 반장은 교무금을 면제해 준다거나 하는 그런 것).
두 번째 이유는 우리 본당 신자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도 그 빈 집은 다시 신자들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총 15세대였던 한 반이 10세대로, 다시 7세대, 5세대로 점점 줄어든다. 우리 동네는 10평부터 15평까지의 낡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이 많다보니 이런 집으로 이사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주로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천주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잃고 외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새로 조성된 평수 넓은 고층 아파트 단지를 안고 있는 본당들(연수동, 부천 중동, 김포 등)은 신자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옛 모습 그대로의 꼬방동네나 주로 저소득층이 사는 서민 아파트 단지에 있는 본당들(간석2동, 송림동, 송현동, 화수동 등)은 다른 본당 수준의 예비신자 수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 증가율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1999년도 인천교구 교회 통계표 참조).
이처럼 우리 교구의 교세는 본당이 속해 있는 지역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내 생각엔 다른 교구라고 해서 별로 다를 바가 없을 터인 즉 그렇다면 이게 오늘날 한국 천주 교회의 실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어쩌랴, 현실이 이런 걸.
인천교구는 또 대의원대회(시노드)를 마치면서 교구의 목표를 「새 복음화」, 「재 복음화」, 「사회 복음화」로 세우고 향후 10년 안에 총인구 대비 신자 율을 현재 9.4%에서 13%로 끌어올릴 계획 이라고 발표했다(서울 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님도 서울대교구 신자 수를 18%까지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발표한 바 있다).
자고로 교회의 신자 수 늘이기가 곧 복음화냐 하는 문제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이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모아야 하겠거니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이 13%라는 숫자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 고르게 적용되어야지 여차하면 부유한 동네 20%와 가난한 동네6%의 평균치가 될 가망성이 있다는 점이다.
만약 그게 기정사실화 된다면 참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교회란 그 존립 근거인 예수님과는 애시당초 거리가 먼 친목계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점차 중산층 이상의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여가활동 쯤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아니 『교회의 중산층화』라는 말은 이미 들은지 오래여서 귀에 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층들은 심각하게 염려하거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가 않아 못내 아쉽다. 먹고살기 조차 힘든 신자들은 소공동체 모임에 도저히 참석할 수 없는데도 성직자들은 여전히 복음나누기 7단계를 강조한다.
그것이 본당 활성화의 척도인양 말한다. 그런 와중에 가난한 이들은 하나 둘 교회를 떠나고 가난한 동네의 성당은 경험 없고 능력 없는(?) 신부들의 단골집이 된다. 슬프게도 작금 우리 교회는 점점 부유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하고 있으며 맘몬을 섬기는 그릇된 자본주의에 편승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짙게 풍긴다.
일부 대형 개신교회의 목사세습을 둘러싼 꼴불견들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 천주교는 아직…』하며 자위할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난한 사람들이 북적이는 교회,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게 반드시 풀어야 할 우리의 숙제다. 성탄절만 다가 오면 부유한 사람들의 푼돈이나 모아 「불우이웃」을 외치는 짓은 이제 그만 하자. 그런 교회 울타리 안엔 가난한 이들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 예수님은 언제까지 울타리 밖에서 서성거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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