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폭우가 쏟아지던 8월25일 서울 뚝섬 운동장에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껏 내린 비로 운동장은 물이 고여 커다란 웅덩이 같았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상대 진영으로 볼을 차내고 있는 30명의 「축구선수」들은 바로 불교 조계종 총무원과 천주교중앙협의회 직원들 이었다. 불교와 천주교를 대표해 물웅덩이 속에서 몸으로 부닥치며 우정을 쌓은 이들은 저녁도 함께 하며 낮에 못 다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다종교 사회이다. 「종교 박람회」장이다. 한국의 종교는 모두 합쳐 수백개. 한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신흥종교들까지 포함해 그야말로 한국의 종교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한국사회에서 종교간의 대화와 화합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종수 신부는 대회를 열며 인사말에서 선뜻 입에 올리기 어려운 불상 훼손 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김신부는 『불상 훼손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깝고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총무원 직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불상 훼손은 그야 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엽기적」인 사건들이었다. 누가 이런 일들을 자행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이런 사건들은 종교간의 갈등과 긴장의 요소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체육대회는 무엇보다 고위 성직자들이 아닌 일반 신자들간의 만남이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아울러 불교와 천주교의 모든 행정 업무가 집중되는 중앙 행정기구의 직원들이라는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사실 그 동안 불교와 천주교의 만남은 주로 어른들의 만남이었다. 신부님과 스님과의 오랜 연분이거나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사회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회동하기는 했어도 일반 신자들이 이처럼 몸으로 부딪혀 우정을 쌓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종교간 갈등은 새 천년에도 여전히 해묵은 과제이다. 그리스도교 일치 문제도 그렇지만 한국과 같이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닌 다종교 사회인 경우 불교나 유교 등 비그리스도교와의 대화는 더욱 중요하다. 이번 체육 대회가 발전돼 모든 종교인들의 잔치 마당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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