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삶은 환경파괴와 연결되지 않는 게 없다. 감시를 해야한다면 그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몇 년전 가톨릭 교회에서 주최하는 환경워크숍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일정이 다 끝나고 우리는 「환경감시단」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선물로 받았는데 '환경감시단' 이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거슬렸다.
감시는 경계하며 지켜본다는 뜻이니, 이 모자는 환경을 훼손하고 망가 뜨리는 자를 감시하는 사람이 써야 한다. 「모자를 쓰고 감시를 하라니, 도대체 누구를 감시하란 말인가? 환경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무상으로 주신 것이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이 모두 다 주인이며, 또한 어느 누구의 소유물로도 국한시킬 수 없는 것인데…. 자연환경이 공동의 자산이고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물이 아니라면,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환경을 지켜야지 누가 누구에게 감시를 시키고, 누구에게 감시를 당한단 말인가?」. 이런 이유로 나는 「환경감시단」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환경감시단」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자주 눈에 띈다. 신문 잡지는 물론이고 특히 거리에 나가면 택시나 승용차 뒤에 「환경감시단」팻말을 달고 다니는 차량들이 쉽게 눈에 띄곤 한다. 차량이 내뿜는 배기 가스는 대기오염의 주범인데 오염자 자신이 감시단이라는 팻말을 버젓이 내붙이고 다니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사실, 환경위기에 대해 특별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나 자신도 알고 있는 지식에 삶을 일치시키지 못해 늘 곤욕스럽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어느 것 하나 환경파괴와 연결되지 않는 게 없다. 이런 처지에 감시를 해야한다면 그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자신, 그리고 자신의 편리만 생각하고 환경 따윈 안중에도 없는 삶을 영위하는 자신, 그 가운데 나는 어느 쪽인가를 늘 엄격하게 판가름해야한다. 저녁 무렵이었다. 『이모, 어른들이 이럴 수가 있어요? 글쎄… 떡볶이 아저씨가 음식물하고 쓰레기를 도로에다 막 버리는 거 있죠?』
밖에서 들어온 조카 수연이가 자못 흥분해서 씩씩거렸다. 그는 애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도 아이들의 눈이 얼마나 매서운지 의식하지 못했나보다. 아이의 얼굴에 어른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분노가 서려있다. 훗날 이 아이들이 자라 환경을 망가뜨린 어른들을 질책하면, 그 때 우리는 뭐라고 변명을 할 것인가? 최근 전국 각지에서 환경감시단이 잇따라 발족되고 있지만, 정작 오늘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환경감시단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눈빛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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