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의 앞뒤와 상하 좌우에서 나를완전히 둘러싸시고 나의 가장 깊숙한 곳에 늘 현존하신다. 아버지는 나보다 나에게 가장 가까우신 분 나보다 나를 지탱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는 내가 나에게 가까운 것보다 훨씬 나에게 가까우신 분이시며, 내가 나를 움직이고 지탱하는 것보다 훨씬 나를 움직이시고 지탱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하느님이 전부, 나는 무
아버지의 손바닥에 놓여있는 미소한 알 하나, 현미경으로도 겨우 보일 만큼 미소한 알 하나-그것이 우주 전체다. 아버지가 우주를 지탱하시는 손가락을 약간이라도 움직이시기만 하면 우주는 밑에서 떨어지기는커녕 완전히 무로 돌아간다. 이 우주 안에 은하계가 있고, 은하계 안에 지구가 있고, 지구 안에 한국이 있으며, 이 한국 안에 내가 있다. 나는 그만큼 아버지께 절대적으로 매달려 있다. 아버지 앞에서 나는 진정으로 아무 것도 아닌 무에 불과하다. 하느님과 나를 양극단에 두고 '하느님이 전부, 나는 무'의 현실을 그대로 보고 인정하고 사는 것이 '관상의 삶'인 것이다.
무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온갖 죄와 더러움으로 가득찬 나를 아버지는 받아주시고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니, 나는 뭐라고 아버지께 감사해야 할 지 모른다. 이와 같은 나를 당신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시고 당신의 목숨, 예수의 목숨을 바치실 만큼 나를 사랑해주시니, 나는 어떻게 그 은혜를 갚아야 할 지 모른다. 내가 아무리 감사한다 해도 감사해야 할 천분의 일도 감사하지 못하고, 내가 아무리 은혜를 갚는다 해도 갚아야 할 은혜의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분께 오로지 감사드릴 뿐이며, 하느님을 위해 어떤 고생을 겪었고 어떤 희생을 바쳤다 해도 그분께 오직 찬양을 드릴 뿐이다.
그것이 아버지와 나의 관계,나의 진정한 처지, 내가 아버지 앞에 당연히 지녀야 할 자세이다. 그 관계를 인식하고 나의 처지를 인정하고 그 자세를 지니며 사는 것이 나의 삶이다. 그 관계와 처지와 자세로서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나의 기도이자 묵상인 것이다. 천국에서 이 관계와 처지와 자세로서, 나의 전부이신 아버지께서 무에 불과한 나를 당신 품에 껴안아 주시고 그분 안에 쉬는 것-그것이 나의 영원한 행복일 것이다.
아버지를 좀더 가까이 느끼고 좀더 생생하게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아버지와 좀더 친밀히 지내고 아버지께 좀더 의지하며 살아가자. 아버지를 늘 숨쉬고 들이마시며 생활하자. 아버지를 나의 원천과 목적, 나의 전부로 모시고 살아가자.
2. 당신을 사랑으로 내어놓으시는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를 어떤 분으로 모시느냐 하는 것은 사람이 집에서 어떤 아버지와 같이 살았느냐에 달려있다. 무서운 아버지와 같이 살았으면 하느님 아버지를 무섭게 생각하게 되고, 위엄있는 아버지와 같이 살았으면 하느님 아버지를 위엄있는 분으로 믿게 되고, 사랑스러운 아버지와 같이 살았으면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스러운 분으로 모시게 된다.
사랑스러운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는 엄격함도 위엄도 사랑도 다 갖추신 분이시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시기에 무서운 하느님 아버지가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시기에 사랑스러운 하느님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어떤 시기에도 사랑스러운 아버지가 꼭 필요하다. 점점 무서운 아버지에서 위엄있는 아버지로, 위엄있는 아버지에서 사랑스러운 아버지께로 옮아가는 삶의 자세가 요망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요한 1서 4, 16) 이것은 아버지의 특성을 제일 아름답게 표현한 말씀이다. 사랑이신 아버지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으시면서 삼위일체 안에 외아들을 낳으시고 성령을 발출(發出)하신다. 그 아버지는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내어놓으시면서 삼위일체 밖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신다. 이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아버지는 외아들과 성령을 삼위일체 밖으로, 세상에 보내신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내의 외아들의 탄생과 성령의 발출, 삼위일테 밖의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구원 및 외아들과 성령의 파견은 모두 아버지 자신의 생명과 사랑의 '자기양도 (自己讓渡)'의 역사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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