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같은 주제를 가지고 몇번의 건의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받았다. 다른 분들도 아닌 수녀님들로부터였다. 약간의 '항의성' 성격을 띄고 있는 수녀님들의 건의 주제는 다름아닌 '케이크'와 관련된 것들이다.
신문을 만들다보면 애독자들로부터 크고 작은 건의나 항의 등을 받게된다. 발전적 의미의 건의야 기분 나쁠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항의의 경우 항의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간혹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건의나 항의는 신문사측으로 볼때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관심의 또다른 표현, 즉 적극적 표시라 보기 때문이다.
'케이크'가 항의의 주제가 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수녀님들의 건의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신문지상에 '케이크 자르는 장면이나 축배 장면이 너무 많이 또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와같은 장면의 사진 사용을 자제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수녀님들의 걱정은 지금 우리는 IMF 상황하에 있다는 것, 절약과 절제, 그리고 검소를 선도해야 할 교회 신문들이 그와 같은 장면을 많이 싣는 것이 보기에 민망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몇개월동안 '케이크 자르기'나 '축배' 장면이 그 어느때보다 신문지면을 많이 차지한 것은 사실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초까지 은경축, 출판 기념회, 취임식 등을 포함한 각종 축하자리가 비교적 자주 열렸기 때문이었다.
본당이나 단체, 그리고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기념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은 이제 한국교회가 그만큼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쌓이고 연륜이 깊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0년대에 비해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교회는 여러가지 분야에서 기념하고 축하할 사안들이 많아졌다. 평협을 비롯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메리지 엔카운터, 성령쇄신 등 각종 신심, 운동, 사도직 단체들이 각각 50주년, 30주년 등 설정 기념일을 맞이했는가 하면 100주년을 넘긴 명동성당을 비롯 많은 본당들이 본당 설정 수십년이라는 기념일을 앞다투어 맞이하는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성직자와 평신도 역시 연륜이 쌓이는 만큼 개인적 축하자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1년에 몇명 정도에 불과하던 은경축이 우선 상당히 많아졌고 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 성장을 읽게해 주는 중요한 바로미터이기도 한 것이다.
축하의 자리에서 서양식 케이크나 케이크처럼 쓰이는 한국식 떡 등은 대표적인 상징물들이다. 주인공과 더불어 주요 초대손님들이 함께 케이크를 자르는 순서가 빠지면 어딘가 허전할 만큼 케이크(떡) 절단은 이미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
그 본당이나 단체, 또 그 분들로서 축하케이크 절단 예절은 그날 한번 있는 것이다. 축배를 들 일 역시 생애에 있어 그리 많지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작게는 1만원에서 크게는 몇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격의 케이크와 몇병의 샴페인은 각종 '축하식의 꽃'으로 반복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수녀님들의 염려가 케이크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장면을 굳이 선택하는 신문의 무신경을 탓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수녀님들의 걱정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신문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축하식 축하연 자리 자체가 사진을 찍기 위해 적절한 자리라는 것, 케이크 절단이나 축배 장면은 그중에서 가장 '사진발'이 잘 맞는 장면이라는 것을 말이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요 인사들을 한 장면에 잡을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또 축배만큼 축하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장면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수녀님들의 지적 이전에 우리 역시 이같은 고민을 몇번씩 거친바 있다. 고민속에서도 케이크 절단 장면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누구든, 어떤 단체든 그것이 쉽게 '다시올 수 없는 기회일 것'이라는 배려아닌 배려 때문이었다.
바로 이같은 상황속에서 수녀님들의 사랑어린 지적은 진정 고맙기 짝이없는 일이다. 우리들의 새로운 선택을 위해 수도자다운 용기와 힘을 보태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담긴 수녀님들의 건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다.
"수녀님들 죄송해요. 빵파는 분들도 먹고 살아야죠. 그러나 걱정마세요. 어디 한번 줄여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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