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당신 자신을 남김없이 외아들과 성령께 내어놓으신다. 당신의 신성(神性), 무한함, 영원함, 전능함까지 모두 외아들과 성령께 내어놓으시고 서로 나누신다. 그래서 외아들도 성령의 신성, 무한함, 영원함, 전능함을 갖추신 하느님이신 것이다. 이것은 삼위일체 내의 아버지의 '자기양도'의 역사이다.
아버지는 이어서 당신 자신을 남김없이 삼위일체 밖으로, 세상에 내어놓으신다.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내어놓으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에 외아들과 성령을 보내시고 인간을 구원하신다. 이것이 삼위일체 밖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아버지의 '자기양도'의 역사인 것이다.
보통 아버지를 "우주의 창조주"로, 예수를 "구세주"로, 성령을 "성화하시는 분"으로 표현한다. 실은, 창조와 구원과 성화는 삼위일체 전체가 수행하시는 역사이며, 창조도 구원도 성화도 삼위일체 하느님 전체의 "자기양도"의 역사인 것이다. 다만 창조는 아버지가, 구원은 예수가, 성화는 성령이 앞서시고 직접 수행하시는 것이다.
실은, 창조도 구원도 성화도 "계속되는 일련의 역사"인 것이다. 창조는 창조로써 끝나지 않고, 구원으로 진행되고 성화로 완성되며, 구원은 창조로 이미 시작했다가 성화로 완성되고, 성화는 창조로 시작했다가 구원으로 결정지어졌고 개개인의 성화로 완성되는 것이다.
나의 창조, 구원, 성화의 일련의 역사에서 아버지는 늘 당신 자신을 사랑으로 나에게 내어놓으신다. 아버지의 내어놓으심과 사랑은 어느때 베일로 가려서 잘 보이지 않고, 어느때 오히려 고통으로 보일 수 있다. 고통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그럴때 나는 나의 종교가 "십자가의 종교"임을 상기해야 하고, 나의 구세주가 "십자가의 예수"이심을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가 제일 큰 은총이듯이, 아버지는 고통의 십자가로써 은총을 주신다. 십자가가 제일 큰 사랑이듯이, 아버지는 고통의 십자가로써 나를 사랑하신다. 고통 안에 아버지의 은총을 보고, 고통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받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고통 안에 은총을 찾아내고 고통을 사랑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 신앙인 것이다.
언젠가 천국에서 아버지의 그 사랑을 똑바로 보고 깨달을 것이다. "고통의 십자가 안에 아버지는 진정으로 나에게 은총을 주셨고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 고통의 십자가로 싸인 아버지의 은총과 사랑을 믿는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이다. 참으로 아버지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백배로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 (창세기 1, 27)은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을 살며 마침내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이 되어 그분께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을 사랑으로 남에게 내어놓음으로써 인간으로 완성되고 거기에 참보람을 느끼고 행복과 구원을 찾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을 사랑으로 남에게 내어놓을수록 당신을 사랑으로 내어놓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진정으로 살수록 당신을 사랑으로 남에게 내어놓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간다.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면, "하느님 아버지를 볼 수 있다면 바로 그 사람과 같은 분이시겠지"하고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느끼게 하는 그 그리스도인은 진정으로 아버지의 모습이 되었고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마태 5, 45) 아버지와 똑같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너그러운 사랑으로 대한다. 성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나의 눈을 칼로 도려낸다 해도, 나는 남은 한 눈으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것이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특별한 자비와 애정을 보여 함께 가난과 고통을 나누는 그리스도 안에 예수가 현존하신다. 그는 벌써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남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이미 하느님의 사랑이다. 이리하여 사랑과 자기양도이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창조된 그 사람은 한평생 사랑과 자기양도를 실천하고 마침내 사랑과 자기양도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아버지의 품 안에 돌아갈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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