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된다. 머리를 숙여 재를 얹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겸손하게 묵상하면서 회개와 보속의 길을 걷는 시기이다. 특별히 올해의 사순시기는 지난해에 이어 어느때보다도 혹독한 경제적 시련이 계속되고 있는 때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경제난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몇곱절 더 고통스럽다.
국제적인 신용평가 기관들이 한국의 경제 상황이 호전된 것으로 보고 국가신용등급을 올리고 있다. 매출이 급감했던 백화점 고가품 매장들은 언제 IMF였느냐는 듯 최근 다시 판매가 늘고 있다. 국가 경제가 호전되는 조짐이라면 누구나 반가워할 일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런 소식들은 그저 남의 일로만 보인다. 아직도 실직자들은 늘어나고 물가는 올라가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한끼 식사를 위해 삭풍 속에 수십 수백명씩 줄을 서 있는 모습도 여전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올해 사순시기 담화에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시리라" (이사 25,6 참조)며 부활의 희망을 일깨워 준다. 교황은 우리가 부활의 희망을 간직하고 하느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사순시기를 살아간다면 '진보가 가져다준 물질적 혜택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칠 줄 모르는 빈곤 상황들'로 양심의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잔치는 영원한 생명에의 초대이다. 사순시기를 지나 성찬례를 통해 주님이 내어준 영원한 생명의 빵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지상에서 미리 맛본다. 그리고 그 잔치에는 모든 사람이 초대된다. 주님의 잔치는 모든 이의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잔치에 앞서 이 땅 위에서 사랑과 나눔의 잔치를 마련해야 한다. 주님의 잔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듯이 우리의 잔치에도 가난하고 소외되는 이가 없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모든 이들이 빠짐없이 잔치에 올 수 있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빈곤과 소외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당장 오늘부터 '구체적이고 적절한 응답'을 해야 한다. 나만의 푸짐한 독상(獨床)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콩 한알이라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웃에 대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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