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전환을 앞두고 20세기 마지막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은 우리는 착잡하기 그지없다. 50년 동안 남북으로 갈라져 혈육에 대한 피맺힌 그리움이 이제는 멍이요, 한이 되어 남은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아는 까닭이다.
6월 21일 남북 차관급 회담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를 품고 있지만 여러 차례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도 무산된 경험이 있기에 이산가족들은 그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지난해만 해도 정부 당국이나 이산가족들 모두 기대를 갖고 4월 베이징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 회담을 지켜봤으나 결국 이산가족 문제와 비료지원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남북한간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회담은 이미 70년대초부터 이어져왔다. 하지만 그중에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고(故) 지학순 주교가 포함된 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 단 한차례 뿐이었다.
기대와 실망이 되풀이되어온 것이 50년에 이르면서 이제 이산가족 1세대들은 늙고 병들어 하나둘씩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식량 사정 악화로 북한에서 70세 이상 노인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만나야 한다. 어떤 이념이나 체제도 혈육을 갈라놓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혈육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이며 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는 죄악이다.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이 이미 50년. 20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대였다. 이제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북녘 동포들을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다.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 이동호 아빠스도 담화문에서 우리가 IMF 경제 위기를 예상보다 빨리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봇물처럼 밀려드는 북한 돕기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뜨거운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으며 북녘 동포들이 곧 우리의 형제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헤어진 가족들의 만남이 실현돼야 함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이산가족 1세대가 연로해 사망하고 나면 이산가족찾기는 그 의미를 잃고 만다. 반세기를 눈물로 그리움을 쌓아온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길은 오직 하나 하루속히 상봉이 실현되는 것 뿐이다.
21일 한자리에 앉게 될 남북한 정부 당국자들이 부디 이산가족 문제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 상봉이 성사될 수 있는 초석을 놓아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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