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에 있는 김영랑 시인의 생가 사랑채엔 이런 글귀의 현판이 걸려 있다. 비참안계관 임무조지귀(非貪眼界寬 林茂鳥知歸). 해석하면 "탐욕을 버리면 눈이 훤히 열리는 법이요, 숲이 울창하면 새가 돌아갈 때를 아느니라" 마음을 비운 자에게만 행복과 은총이 있고, 마음을 비운 자만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소유할 때 행복해지고, 삶도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먼 길을 가는 사람의 행장을 보라. 그가 들거나 지고 가는 짐이 무엇인가를 보라. 참으로 가벼운 차림이리라.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가볍다.
여름 장마철 스님들이 사면이 벽인 방에서 수도정진하는 것을 불교에서 하안거(夏安居)라고 한다. 흰 벽과 마주 앉아서 온종일 모든 생각들을 지우며 참선을 하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피정도 그 본래의 뜻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무소유의 정신
여름 수도(修道)인 하안거가 끝나면 스님들은 바랑을 메고, 바리라는 밥그릇을 들고 동냥수도에 나선다고 한다. 이런 동냥이 먹고 살기 위한 구걸로 타락한 적도 없지는 않지만, 본래 취지는 죄지은 중생으로 하여금 자비를 베풀 기회를 줌으로써 죄의 고통을 씻게 하려는 수도행사인 것으로 그래서 석가모니 자신도 바리를 들고 걸식을 하였고, 원효대사도 염불을 하며 걸식을 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고통 나눔의 체험이며 의식이었고 이같은 의식은 주님의 뜻을 받드는 신자들의 의식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성나자로 마을. 나환우가 겨우 1500명 밖에 안되는데 웬 돕기회냐? 뭘 더 돕는다고 야단들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것은 남을 도울 기회와 장소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 곳이다. 불교에서 「일의일발」 즉 옷 한벌과 밥 그릇 하나 뿐인 무소유의 경지를 강조한 뜻은 우리가 되새겨볼 교훈이 담겨있다.
탐욕을 버리면 몸이 가벼워진다. 탐욕을 버리면 세상이 보이고, 사람이 보인다. 그 방법으로써 불교의 참선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기도의 방법, 수도의 방법으로서 배울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요즘 미국인들은 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성서의 가르침이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나라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에선 참선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프로농구팀 시카고 불스 선수들은 시합 전 참선으로 정신을 집중할 정도라고 한다.
또 현재 미국인들은 티베트 불교에 심취하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에 대한 열기는 자연스럽게 달라이 라마에 대한 존경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최소한 종교적인 편협성은 없다. 범종교회의 참석차 예루살렘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는 얼마전 이스라엘 민족의 성지인 통곡의 벽에 자신의 기원문을 써 넣으면서 『중동 평화는 더 많은 결단과 인내로 얻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큰 바다」요 「뛰어난 스승」이란 뜻의 달라이 라마를 존경하는 것은 그의 사상이며, 그의 인격이고, 그의 진실된 실천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오로지 개인적인 욕망과 집단적인 이기주의에 따라 끝도 시작도 없는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서해의 남북교전이란 충격적인 사건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자 정치권은 남북교전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 서해 파고가 긴장을 누그러뜨리자 마자 그 파고가 정치권으로 옮겨간 느낌이다. 신북풍의혹을 놓고 기싸움을 하는 사이 노동계에선 총파업의 깃발을 들고 있다. 한번도 의혹을 속시원하게 밝혀준 적도 없고, 국민들의 편에서 민생과 민의를 꿰뚫어 본 적도 없는 정치권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또 지리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
지금 6월의 햇살에 포플러의 초록빛이 유난히 반짝이고, 남대천의 은어떼들이 폭포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대자연은 맑고 푸른 연혼을 날리며 아름답고 산뜻한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서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가? 자연을 보라! 신록의 계절을 보라.
마음의 티끌과 같은 탐욕을 버리고, 맑은 눈으로 푸른 세상을 보면, 가진 것은 없어도 우리는 풍요로울 수 있고 넉넉해 질 수 있다.
크게 버리는 것이 크게 얻는 길이라고 한 말을 잊었는가? 진실을 외면할 순 없다. 우리가 얼마나 더 잘 살겠다고 이러고들 있는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