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 지리한 장마가 사람들을 고통의 한가운데로 몰고 있다. 서해에서 마침내 총성이 들리고, 금강산 관광길이 북한 억류로 이어져 판문점에서 베이징에서 연일 총성없는 전쟁이 치뤄지고 있다. 마치 전쟁이라도 즐기듯, 전투적인 용어들이 노와 사, 노와 정 그리고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폭넓게 확산돼가고 있다. 정치권은 또 어떠한가? 잠시 휴전이라도 하듯 탐색전을 펼치다가 상대의 허점이 조금만 보이면 총공세다. 영역다툼을 벌이는 중세 부족국가들과 무엇이 다를까?
모두가 마음 속에 들끓고 있는 적의를 버리지 못하고 싸움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익단체, 지역세력, 정치세력, 정치단체, 그리고 정부조직 내의 내 편과 네편, 나 아닌 너는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고 적의를 불태우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발전이 끊임없는 반대와 모순을 극복하면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전쟁과 싸움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비춰질 수는 없겠지만, 참다운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치졸한 싸움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사람들을 피곤하게만 할 뿐이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대화
목표 돌격형의 정치, 공작과 음모의 정치, 날치기 정치를 보자. 반세기가 넘도록 그 악습은 순환되고 확대 재생산될 뿐이다. 무엇 때문일까?
독선과 아집 때문이다. 대화라는 형식의 자리는 있지만, 고스란히 혼자하는 말, 독백일 뿐이다. 전직 어느 대통령이 당직자들을 모아 놓고 "과거의 정치가 형식 논리적 정치였다면 이제는 변증법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지만, 그 6공도 그후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변증법적 대응과는 달리 독선과 독주로 일관해왔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에게 심려를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국민을 하늘같이 여겨 민심을 헤아리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적절한 사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릴만 하지만, 뒤짚어보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발언일 수 있다.
소크라테스도 변증법을 진리 탐구의 방법으로 삼았다. 지자(智者)를 자처하는 궤변자들과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애지자(愛智者)라고 했다. 참다운 지식은 모든 사물, 예를 들면 국가, 정의, 선 등에 대해 보편타당한 개념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지식은 혼자 생각으로는 안되고 많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많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 생각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그 생각들이 모여졌을 때, 민심이 되고 민의가 되는 것이다.
언필신 행필과
민심과 민의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언로(言路)라는 것이 열려야 하는데, 그것이 막혔을 때 민심은 떠나는 것이란 말이다. 「마녀사냥」이라고 민심을 잘못 읽게 되면 『백성들의 입을 봉하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막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2천여년 전 사기(史記)에 나오는 얘기다. 주나라 여왕이 가혹한 폭정을 펴며 백성들의 입을 모두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자 세상은 조용해졌다.
기분이 좋아진 여왕이 신하인 소공에게 『어떻소? 세상엔 아무 소리도 없지 않소』라고 말하자, 이말을 들은 소공이 왕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국 백성의 입을 막게 되면 물이 차서 제방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무서운 경고가 아니겠는가!
조선조의 이름난 신하 신숙주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임금에 말했다고 한다. 『물길을 트듯 백성들의 입도 터 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누가 이런 직언을 할 수가 있을까?
국민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군주도 한낱 배역자로 말로를 맞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멀리 역사를 거슬러 오르지 않더라도 동시대의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아는 지도자는 실로 민심을 두려워할 줄 안다. 그러나 민심을 두려워한다고 말만하고 실제로 국민 위에 군림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땐 공자는 논어에 이 말을 준비해 놓았다.
『언필신(言必信) 행필과(行必果)-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하고, 행실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