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 복사단 아이들을 쫓아냈는가? 이 사건이 복사단 여름 수련회동안 화제거리였다. 지난 1997년 북녘동포 돕기 급한 식량과 희망의 씨앗 보내기 「한솥밥 한식구」운동을 춘천교구에서 시작하던 때였다. 복사단 여름 수련회 때 「나눔을 위한 현장 체험의 날」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오전 시간에 북녘동포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지금 북한은」비디오를 보여주고 한솥밥 한식구 운동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오후에는 기도시간과 현장 파견식을 하였다. 파견에 앞서 기도시간에 아이들은 이런 쪽지기도를 하였다.
『예수님 오늘 저는 북한 동포를 도우러 갑니다. 처음이라 막 떨립니다. 용기 많이 주세요』『예수님, 지금 한솥밥 한식구인 북한이 위기에 처해있어요. 밥이 없어 죽습니다. 도와주세요』『예수님, 저는 손수건 5개를 다 팔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북한 친구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견지는 춘천시내의 여러 기관이었다. 그런데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온 곳이 있었다. 검찰청, 경찰서, 소방서였다. 반면 아이들의 자기 소개도 들어주고 그 곳에서 하는 일도 설명해주며 싸인도 해주고 아이들의 손수건 설명도 들어준 곳은 적십자사, 교육청, 도청, 우체국, 법원이었다. 은행, 신문사, 동사무소는 곳에 따라 흐리고 개었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새삼 떠올리는 것은 오늘에도 우리의 대북 인식이 「모」아니면 「도」이기 때문이다. 북녘의 굶주림이 심했던 1997년이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에도 『북은 남에게 형제인가, 적인가』하는 물음이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에도『굶주리는 동포들을 죽게 할 수는 없다』와 『군량미로 변할지도 모르는데 위험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대치되어 있었다. 2000년 경의선 철도 복원을 두고도 남북 경제가 하나된 것처럼 뜨는 분위기와 남침을 더 쉽게하는 통로를 만들어준다는 싸늘한 분위기가 맞서있다. 햇볕정책도 남쪽이 의도하는대로 북쪽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또는 북쪽 체제와 사정에 남쪽이 말려드는 것으로 엇갈리고 있다.
왜 이럴까? 왜 한편에서는 한 「모」를 쳤다고 우쭐대고 또 한편에서는 「도」를 쳐서 망가뜨렸다고 할까? 본질적으로 남북문제는 같은 민족의 차원에서 쌓인 적대감을 풀고 꾸준히 신뢰감을 쌓아나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대화도 하고 돕기도 하며 변화를 모색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문제를 그동안 정권유지 내지 체제유지 차원에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형태로, 그리고 지금도 당리와 정책적으로 게임을 벌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신뢰하지 못하고 「모」아니면 「도」로 헷갈리는 것이다. 복사단 아이들과의 한솥밥 한식구 운동 설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깊은 산속 작은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사이좋게 살던 두 마리 붕어가 어느날 서로 물어뜯고 싸우더니 마침내 한 마리가 죽어 물위에 떠올랐다. 죽은 붕어의 살이 썩기 시작하였고 연못의 물도 썩어 들어갔다. 썩은 물을 먹게된 나머지 한 마리 붕어도 죽고 말았다. 그 연못은 지금도 더러운 물만 고인 채 아무도 살고있지 않다.
이야기를 들려주며 제목을 붙여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어리석은 붕어』『붕어 두 마리의 싸움』『붕어의 욕심』『혼자 독차지하려고 하면 둘 다 죽는다』등의 제목을 붙여 주었다. 사람(人)은 이웃에 기대며 사는 존재라고 한다. 신앙이란 그렇게 사람에 기대며 또한 하늘을 우러르며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에 하늘이 심어준 씨앗이 아닐까.
그렇다. 나와 이웃은 한밭에 떨어진 두 씨앗이다. 어느 하나가 밭을 독차지 할 수는 없다. 바람이 불면 함께 흔들리고 눈비가 오면 함께 맞는다. 한솥밥 한식구인 북녘동보를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여 북녘이 굶어 죽으면 우리가 독차지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붕어」가 될 것이다. 어리석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면 거저 얻은 가진 바를 꾸준히 나누며 밥먹듯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세끼 밥을 먹으며 식사전후 기도를 하고 있다. 식사 전 기도는 40자로 되어있고 은혜로이 주신 음식에 강복을 청한다. 식사 후 기도는 81자로 되어있어 조금 길며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세상을 떠난 이들의 안식을 빈다. 그래서 연옥영혼들은 우리들의 밥먹을 때만 기다린다는 우스개 말도 있다. 식사후 기도가 조상의 전구에 힘입어 한해동안 땀흘려 거둔 곡식을 먹었다는, 그래서 세상을 떠난 조상의 안식을 빈다면 식사 전 기도에 같은 밥을 먹어야만 살아가는 북녘형제를 기억한다면 자연스럽고 균형이 맞지 않을까.
밥먹듯이 기도하자고 식사 전 기도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50자 내외의 기도를 덧붙이자고 제안하면 실현될까. 하느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약한 재판관도 과부의 꾸준함과 성가심에는 두 손 들지 않았던가(루가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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