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다. 땀흘려 일한 사람들이 모처럼 맞는 휴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로 떠날까? 벌써부터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가슴 설레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산으로 바다로 가는 길들은 몸살을 앓을 것이다. 동해와 설악산이 맞닿아있는 북행 길도 예년과 같이 차량의 홍수로 막히겠지만 서해나 남해를 찾는 피서객들로 남녘의 길들은 넘쳐날 것이다. 남으로 남으로 떠나는 이들의 행렬을 보고 있으면 반세기 전의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어른 거린다.
6월에서 7월로 이어지는 길들은 그 자욱마다 뼈아픈 기억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1950년 6월25일의 한국전쟁이 51년 7월10일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에서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까지로 사실상 3년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나 좥휴전좦이란 단어가 상징하듯 한반도에선 반세기동안 전쟁의 불안이 끊일 날이 없었다. 서해교전과 관광객 억류사건은 묘하게도 6.25 49주년을 맞는 날 정점을 이루어 모처럼 열렸던 금강산 뱃길마저 7월들어 끊기고 말았다.
남북교통망 막힌지 반백년
분단은 우리에게 모든 길이 끊겼음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는 남북한 연결 교통망이 분단의 벽으로 가로 막혔다는 것을 실감하며 우리는 반백년 세월을 견뎌왔다. 그래서 남과 북을 오가던 길들은 띠풀에 덮히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차 잊혀져 가고 있다. 그 길들을 기억하며 지도 속에라도 그려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쯤 될까? 남으로 남으로 피서를 떠나는 이들이 50년 전의 그 길을 헤아려 볼 수가 있을까?
오늘도 나는 막힘없이 달리는 통일로를 달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의 끝자락에서 길들을 생각한다.
옛날에도 길이 있었다. 조선시대 9대 간선로 중 가장 중요한 도로로 의주로가 있다. 이 길은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육상교통로로서 사신들의 내왕이 잦았고, 양국 사신들을 위한 휴식처와 숙박소가 있었으며 지금도 홍제원의 터가 남아있다. 지금의 자유로와 통일로가 만나 통일대교를 건너 널문리란 옛지명의 판문점을 지나면 개성과 평양으로 이어져 의주까지 치닫던 길이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국도 1호선도 이 길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경의선, 경원선, 금강산선 철도가 남과 북을 잇는 혈맥으로 우리들 기억속에 살아 있다. 아니 기억속에만 살아있지않고 지금도 일부 단절구간을 제외하면 남과 북에 실재하고 있다.
가끔씩 그 길들의 끝을 가본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을 달고 멈추어선 철도 종단점, 지금은 임진각 내에 관광상품처럼 전시돼 있지만, 경의선 철도는 문산역에서 끝이 나고, 여우고개에 까지는 철로가 그대로 깔려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 내 옛 장단역 자리엔 지금도 녹슨 채 무성한 갈대 숲에 잠들어 있는 기차가 있다. 개성이 불과 눈앞,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코앞의 거리가 아닌가.
철원에도 경원선 철길과 금강산 철길이 그대로 살아있다. 우리측의 신탄리, 군사분계선 16.2㎞와 북한측의 군사분계선 평강간 14.8㎞만 이어면 경원선은 지금이라도 남북을 하나로 잇는 길이 될 수가 있다. 금강산선도 마찬가지다. 우리측 철원-금곡간의 24.5㎞는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다. 우리 측의 문산-장단간 12㎞, 북한 측의 봉동-개성간의 8㎞ 구간의 경의선이 복원되고, 경원선, 금강산선이 복원되며, 목포-신의주간 국도 1호선과 남해-초산 간의 국도 3호선이 옛모습을 찾는다면 남북한간의 육상로는 오늘 살아있는 길로 완벽하게 재현될 수가 있다. 막힌 길은 열려야 한다.
‘길’복원 통일시대 열자
지금 통일시대를 대비하고, 21세기 동북아중심국가로서 교통망 구축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한반도가 더 이상 섬 아닌 섬으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 모두가 끊긴 길부터 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길로 사람과 물자들이 자연스럽게 오고가야만 한다.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한 통일시대의 대비는 바로 길을 복원하는 일이다. 남으로 남으로 몰리는 여름 피서길이 아니라, 남과 북을 시원스럽게 오가는 여름 피서길, 그 길이 지금 눈앞에 아른 거리며 손짓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