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과 흥분으로 맞았던 새 천년의 첫해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필자는 학기가 시간의 단위로 정착되고 있는데, 십 수년의 경력을 지닌 초년병에 불과한데도 점차 학기말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쩐 일인가. 학기말이 가까워 오면 학기초 계획했던 일들은 제대로 마무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면서 늘 부족함을 자성한다. 필자는 수업이 시작하는 첫 주에 전반적인 강의의 개괄을 설명하고,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가운데 항상 학생들에게 수업에 임하는 두 가지의 태도를 부탁하는데 동시에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우선 나눔의 자세를 강조한다. 강의는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쌍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교수와 수강생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수강생 상호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교수가 알고 있는 지식을 수십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수업이 아니라 교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탐구하고, 고민해서 얻은 지식을 공유하자는 생각이다. 학기초 학생들에게 '나눔의 자세' 를 이야기 할 때마다 필자는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성체대회의 상징적 마크였던 붉은 색의 '동그라미 안의 십자가' 를 떠올린다. 요즈음도 뒷 창에 빛 바랜 스티커가 붙어있는 차량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선적으로 「십자가의 빵」즉 성체를 의미하는 것이겠으나 어찌 보면 빵을 사등분해서 골고루 나누자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나눔의 본질은 하나를 나누어 나눈 몫을 각자가 챙긴다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리라. 함께 생각하고, 누리고, 공유한다는 의미가 훨씬 강하다. 영어로 나눔을 「share」라 한다면 그것은 물론 「쪼갠 몫」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함께 나눔」을 의미한다. 열 명의 학생 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생각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일방적으로 던져 주는 교수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훨씬 낫다. 강의, 학생들의 연구발표,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눔의 진리를 매 학기 확인하고 있다. 두 번째로 관용의 자세를 부탁하고 또 스스로 다짐한다.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한국정치를 강의하고 토론하다 보면 한국정치를 바라 보는 학생들의 시각이 각양각색임을 알게되고 그러한 다양한 생각과 시각들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나누어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게 표현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학생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신중하게 평가하는 자세를 갖도록 부탁한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토론하다보면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가 많고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필자는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으면서 「똘레랑스(tolerance)」즉 관용이 한 개인 의, 사회의 중요한 덕목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한 학기를 접어가면서 스스로 나눔과 관용의 자세로 수업을 이끌어 왔는지 반성해본다. 사실인 즉 그것은 단순히 강의실에서 강조하는 덕목이나 자세이기 보다는 나의 삶의 지표이며 나침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는 사회공동체의 덕목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나눔과 관용의 정신이 필요한 상황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우리 사회를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나 집단만이 생존할 수 있고, 경쟁에서 처진 개인과 집단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나눔과 관용의 정신은 정말로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물질적인 나눔과 함께 심적인 고통, 좌절감, 소외감으로 빠져 있는 이웃과 어려 움을 나누어야 한다. 구조조정으로 실직하게 된 근로자, 부모의 무관심으로 내 팽개쳐진 청소년, 어두운 그늘에서 눈물짓는 수인들과 마음을 나누어야한다. 옛 말에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엷어진다고 하지 않았 던가. 인류박애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눈을 잠시 돌려 아프리카의 기근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알게된다면 「나눔」은 인류공동체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덕목 이라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현재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의 갈등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데서 출발 한다. 여야, 정부와 국민, 사회집단간은 타인 또는 타 집단의 존재가치와 행동양식 을 인정하는 관용의 자세를 지녀야한다. 오랜 분단과 군사정치문화의 탓으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분법적 사고, 적과 동지, 흑백논리에 익숙해져있다. 자신의 사상과 행동만이 옳다는 아집, 다른 사고와 생활방식, 이질적 문화를 업신 여기는 경직성과 배타성으로부터 벗어나 사고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나눔과 관용, 그 것이 곧 상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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