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는 먼 옛날이나 인터넷 빅뱅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절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당연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수백년전의 가르침이 오늘의 현실문제를 보여주는가 하면 오늘의 문제가 선인의 생각에서 그 근본을 드러 내기도 한다.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부패사건도 그중의 하나다. 동방금고의 불법대출사건과 관련, 뇌물을 받은 금감원 사건이 보여주는 오늘의 문제가 조선중기 한 고승의 선시(禪詩)를 통해 절절 하게 그 핵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의 소요대사(逍遙大師.1562~1649)의 이야기. 그는 상징 적인 비유로 개념적인 지식을 초월, 그 실상을 실감토록 했다. 백천의 경전은 손가락 같아서(百天經卷如標指.백천경권여표지) 손가락따라 하늘의 달 보네(因指當觀月在天.인지당관월재천) 달 지고 손가락 잊어한 일도 없으니(月落指忘無一事.월락지망무일사)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잔다(飢來飯困來眼.기래반곤래안). '손가락에 달이 있나' 라는 소요대사의 선시다. 이 시에 대해 불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하고 있다. 경전의 말씀들은 깨우침의 길잡이일 뿐 그 말씀이 길의 본체는 아니다. 마치 손가락은 달이 있는 곳을 가리켜 달을 찾게 할 뿐 손가락 끝이 달은 아닌 것과 같다. 달을 보려는 이가 손가락에 매달려 있으면 손가락만 볼 뿐 달을 볼 수는 없다. 또 손가락의 인도로 달을 찾아 달의 변화에 매달려 있다보면 달도 지고 말아 그 실상을 잃게 된다. 즉 외형의 달에 집착하면 내면의 실상을 잃는다. 차라리 손끝과 달을 모두 잊은 망념의 경지가 법체의 실상이 아닌가. 모든 것을 버리고 범상한 일상사로 되돌아옴이 바로 삶의 실체요 법의 근원일 수 있다. 배고프면 밥이 생각나고 피곤하면 자려는게 범속한 일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삶의 실체로 본 모습을 드러냄이다. 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자체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선시에서 오늘의 현실을 투영해주는 문제를 보고자 함이다. 400여년전의 선시 에서 현실로 돌아와보면 금감원사태 역시 소요대사의 손가락 끝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패를 감독하는 기관이 이 모양이니 더 이상 무엇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이마저 이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의 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사건의 와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금감원 국장의 죽음은 더욱 충격적이다. 더욱 죽은 자와 산 자의 예기가 서로 달라 그 대결의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미적대는 검찰의 수사는 더욱 어려워지고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기관의 부패를 감독하는 금감원이 뇌물을 받고 그 뇌물을 받은 장본 인중 하나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가 하면 산 자는 죽은 자의 유서내용을 전면부인하는 사태. 또 이를 수사하는 검찰은 정치권의 눈치를 살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거기에 국가기관 이나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입법을 해야 할 국회는 입법을 회피 한 채 사태를 정치쟁점화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손가락 저편의 달이 보일리 없다. 더욱 국회의 무책임한 폭로전은 사태해결을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국회는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던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마련한다던 부패방지법을 4년째 표류하게 만는 곳이 국회다. 지난 96년부터 시민 단체의 운동으로 시작된 부패방지 입법청원운동이 결실을 맺을 듯 하다 가도 국회에서의 싸움박질로 유산돼왔던게 저간의 사정이었다. 국회야말로 부패방지법을 사전에 마련,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법적 조치를 마련했어야 했다. 시민단체들에 대한 입법청원을 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이같은 일까지 벌어지게 만든 소행을 생각하면 국회를 직무유기로라도 처벌해야 마땅할 일이다.
손가락이 아닌 달의 실체를 찾는 길잡이는 없는 것일까. 더욱 달에 집착 하면 내면의 실상을 잃는다며 손가락 끝과 달조차 잊을 것을 권하는 소요 대사의 가르침, 모든 것을 잊고(버리고)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는 무욕적 삶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현실에 적용할 방법은 없을까. 오늘날 죽은 자도 산 자도 그리고 공직자의 감시기관과 부패를 막는 입법 기관도 마냥 손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이든 더 차지하려는 아귀다 툼의 세상을 소요대사는 미리 바라본 것일까. 온통 신문을 혼돈의 뒤범벅 으로 만들고 있는 이 사건을 바라보면 착잡함은 더해진다. 정말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고 쓰인 음성 꽃동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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