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일년중 가장 은혜로운 때인 11월 위령성월이다. 위령성월이 은혜로운 때라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자비하신 하느님께 기도와 보속을 드리는 엄숙한 달이요, 동시에 언제든 한번은 죽게될 우리 자신들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영원한 세상을 동경해보는 거룩한 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한번은 죽는다. 대한민국 최고 갑부도 죽고, 절대권력자도 죽었다. 요즈음에는 수많은 사고사, 돌연사로 갑작스런 죽음들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주위 사람들처럼 언젠가는 나도 죽을 몸이지만 죽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지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먼저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연일 방송.신문에 보도되는 수많은 부음 소식의 주인공이 바로 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현대철학을 대표한다는 하이데거가 인간의 본질을 「죽음에로의 존재」로 규정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 6)이신 주 예수님 안에서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인류를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 라도 살 것이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26)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현대인들은 「죽을 시간」도 없을 만큼, 사는 데 몹시 바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계획과 일들을 다음 으로 미루며 살아가는 것인가.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남아있을 사람이 있을까. 삶이란 결국 죽음 이전의, 아니 그 직전의 삶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디가 죽어가고 어느 정도 살아 있는가 돌이켜 볼 일이다. 교회는 11월을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달로 정하였다. 그것은 신자들에게 「새 삶을 바라고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날마다 반성하며 살자」는 취지에서다. 사실 죽음에 대한 묵상이야 말로 올바른 삶을 살기위한 첩경이다.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을 주님의 제자답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마태 25, 34)처럼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지만 못된 짓을 일삼거나 이기적이며 이 세상 쾌락에 빠져 함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끄럽고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며 이웃 사람들, 특별히 불우하고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성실히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