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
생각하는 계절.
나는 갑자기 기도하고 싶다.
하느님께 『고맙습니다』하고 읊조리며 감사드리고 싶다.
우리가 노래하는 그 기도처럼.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고민이 반성될 수도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형제가 짐으로 느껴 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의(義)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새천년의 희망과 21세기의 복지를 얘기하기에 바빴던 2000년 한해도 이제 겨울 풍경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여름 내 요란스럽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끊기고 새떼들도 황망히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절기는 찬서리 내리는 상강에서 겨울 문턱의 입동으로 접어들고 단풍도 절정에서 잎을 떨구고 있다.
가을은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빈 자리가 유난히 커보이는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이라고 찬미하지만 가을에 와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국의 가을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로 약화되고 있는 계층간의 갈등이다.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젊은이들에까지 급속히 확산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가진 자들에 대해 못가진 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우리 사회를 메마르고 사납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진 자들은 IMF 위기 이후 오히려 고율 이자와 자본소득 증대를 통해 불려온 부를 바탕으로 호화사치성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에 비해 못가진 자들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고가의 수입명품들이 내놓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되는 사회, 재래시장과 서민층을 상대한 음식점, 술집, 상점들은 썰렁하기만 하니 어찌된 일인가.
아셈(ASEM) 기간 중 강남 일대의 그 포장마차 노점상들이 된서리를 맞고 쫓겨간 것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들이 함께 어울려 가슴을 나누는 공간, 숨통이 막힐 것 같은 비인간화된 도시 서울을 인간화된 마을로 만들기 위해서 라도 프랑스의 노천카페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는 걸인도 사색하는 나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초겨울 어스름 목노주점에 앉아 사색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작은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린 모두 너무 바쁜 것 같다. 생각할 여유도 없다. 기도할 시간도 없다. 11월 2일 위령의 날. 이 세상을 떠난 신부님들이나 조상님께 찾아가 기도만 드려도 전대사를 받는다는데도 용서받을 시간조차 없다며 다람쥐채 바퀴도는 일상을 탓하면서….
주님 용서하세요. 우리가 모두 이렇다구요. 너그럽게 봐주세요.
아시다시피 우리 인간들은 어쩌다 이렇게 너무 바쁘기만 하거든요?
힘들게 살거든요. 근데 주님이 계신데는 참 편안하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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