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최근 몇 사람의 이름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첫번 째는 2년6개월만에 잡힌 탈옥수 신창원이란 이름, 두번 째는 경기은행으로부터 1억원의 돈을 받은 경기도지사 임창열이란 이름, 세번 째는 4억원의 돈을 받은 경기도지사 부인 주혜란이란 이름, 이렇게 셋이다.
세 사람의 이름
지난 주부터 이번 주 며칠 사이 톱뉴스의 인물로 이들의 이름이 하루도 빠진 날이 없을 정도니 그 이름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은 하루 이틀 사이에 차례로 구속 수감되어 앞뒤를 다투었다는 점이다. 탈옥수와 경기도지사 부부,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이들의 이름이 동시에 거명되면서 사람들은 어떤 연관성이 있어보이는 상상까지를 하고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의 상상력이 발동하는 것일까?
시인의 비유법은 전혀 이질적인 두 대상을 대비시켜 동질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표면에 신선한 충격을 주려한다. 소위 동일성의 시적 발상법이다. 평생 신문기자만 했던 내가 시인은 아니지만 탈옥수와 경기도지사 부부의 수감을 지켜보며 굳이 연관성을 찾아보고 싶어하고 동질성의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하는 것은 억지스런 발상법일까?
이름에 따르는 불명예 가장 고통스런 ‘벌’
나는 이런 생각과 함께 이들의 이름을 되뇌이며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란 과연 무엇일까하는 생각도 깊이 해보았다. 우리 선조들은 이름을 참으로 중요시했던 것같다. 그래서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가장 불명예로 여겨왔다. 이름이란 한 개인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그뿐만 아니라 가문을 뜻하는 의미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 이름의 명예는 선비정신에서 강조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나라의 법도 법이지만 그보다는 마을공동체의 자치적인 법이라할 수 있는 좥향약좦을 더 무서워했던 것같다.
향약에 보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사람에게 제재를 가했다. 상벌, 중벌, 하벌, 이렇게 삼등급으로 나누어 죄의 무게만큼 벌을 주었다. 그런데 그 삼등급의 벌 내용이란 것이 오늘날의 상식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하벌은 죄지은 이의 다리에 매를 가하는 태형이었고, 중벌은 많은 사람 앞에서 책망을 듣게하는 면책이었다. 그러면 가장 벌이 무겁다는 상벌은 무엇이었을까? 상벌이란 죄지은 이의 이름을 적어서 번화한 거리에 내거는 괘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일 높은 등급의 벌인 괘명이 오히려 하벌에 속하는 것같다. 하지만 옛사람들에겐 이름에 따르는 불명예를 가장 고통스런 벌로 여겼던 것같다. 어쩌면 신체적 고통은 일순간이지만 정신적 고통은 긴 것이어서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름 먹칠돼도 기세등등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몇천억을 꿀꺽한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지도층 인사들이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그리 치욕적으로 생각지않는 것같다. 온갖 비리와 부정에 연루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하고 감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도 얼굴을 들고 대명천지를 활보하며 다시 이름을 내려한다. 명예가 무엇인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 제 이름 값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름 석자와 수인번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새삼 음미해 본다. 세상에 이름 석자를 가지고 나와, 출세라는 것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남긴 오명이 역사에 얼마나 많은가. 살아 생전 자신의 공덕비를 세우고, 기념물의 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가 세상을 뜨기도 전에 지워지고 도려내진 이름 또한 얼마나 많은가.
이름에 먹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생일대 돌어켜 씻기 어려운 일인데. 지금 앞의 세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하기야 당분간, 아니 오래도록 이름 석자대신 수인번호로 불려지겠지만, 그들이 캄캄한 감방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그때도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러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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