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일과 남북협력에 관한 기사 2개를 읽었다. 하나는 교회 밖의 기사이고, 하나는 교회 내의 기사였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통일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청소년 상담원이 초중고생 17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의식 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글쎄」이다. 「관심은 가지만 나와는 멀게만 느껴진다」(48.1%), 「별로 관심이 없다」(28.1%), 「전혀 관심이 없다」(9%)로 통일 무관심이 85.3%에 달한다. 반면 최근 남북교류에 대한 느낌은 긍정적이다. 「감동적이었다」, 「희망적이었다」, 「기뻤다」등 긍정적 응답이, 「당황하였다」, 「혼란스러웠다」, 「무서웠다」는 부정적 응답을 훨씬 앞질렀다.
한편 교회 내 신문은 한국교회가 북한지원의 새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하였다. 남북한 화해시대에 걸맞게 한국교회의 그동안 식량위주의 대북지원이 인적, 문화적 교류와 북한의 의료와 사회복지, 환경, 인권 문제 등으로 북한사회의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일 때라는 것이다. 신문에 단 한줄도 나지 않았지만 춘천교구는 지난 10월 4일 평화의 사도 성 프란치스꼬 축일에 북녘 어린이 결핵 예방 및 치료를 위하여 VACCINE VAN(백신주사차량) 3대를 북강원도로 보냈다. 월정리역에서 6월 25일 가졌던 민족화합의 새날 새삶 전국기도회에 참가하였던 교우들의 헌금을 바탕으로 교구의 한솥밥 한식구 기금을 더해 특별 제작한 차량이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2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달 30일로 예정되고, 북한과 세계 여러나라들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때인만큼 이제 남북 협력과 통일은 국민적 대화와 토론 그리고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 천주교 교세 통계에 따르면 현재 신자수는 약 400만명이나 한국 천주교 신자 모두가 일주일에 백원씩 십년 북녘동포 돕기를 하면 어떨까? 냉담신자, 거주불명자를 빼고 대략 신자 100만명이 한다면 어떨까? 1년에 50억원 은 될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누구나 부담없이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20년 전 첫본당인 시골의 C본당에 부임했을 때다. 무너져 내려앉는 성당을 보면서 '우리 성당 우리 손으로, 일주일에 100원씩, 10년 동안' 이라고 하면서 100원짜리 성당을 짓자며 '주백회' 를 만들었다. 한국 순교성인 103위 중 12세의 유대철 성인으로부터 78세의 유체칠 리아 성녀 나이 사이에 드는 교우들이 그 대상이었다. 기도문도 간단히 「주여, 당신 백성의 소원을 들어주소서」라고 만들었다. 첫글자 「주」와 가운데 「백」자를 합치면 「주백회」가 되는 셈이다. 한 2년 하고 나니 교우들은 조금 속도를 내자며 주에 1000원씩하자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교우들은 주에 1000원씩 하며 「주 천주여, 당신 백성의 소원을 들어주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기도문의 첫 자와 둘째자를 따라 「주천회」가 되었다. 몇몇 교우들은 스스로 더 속도를 내어 주에 한만원씩 하기에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후로 가는 본당마다 주일학교 어린이와 학생들과 일주일에 100원씩 이면 일생동안 착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소외받는 이들과 함게 하기 위하여 주백회를 만들었다. 이 함께 하기 위하여는 첫째주는 장애우, 둘째주는 양로원, 셋째주는 어린이 전교회, 넷째주는 어린이 주보 발행을 하면서 계속 되었다. 사실 남북협력과 통일을 위한 비용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 우리 경제 여건이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는 누구나 여전히 낭비와 과시 생활 습관을 고치며 북녘동포 돕기로 연결하는 의식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남북한 현재 총인구는 7,080만명이고 남한은 4,680만명, 북한은 2,400만명으로 남한인구가 거의 배가 된다. 그런데 남한인구 4,680명의 하루 평균 음식물 쓰레기는 1만 1000톤(8톤 트럭으로 1400대분)에 이르고 연간 8조원이 손실된다는 조이다. 강원도만 하더라도 하루 평균 348톤(8톤 트럭으로 44대분)이 버려져 하루 7억원이 썩는다는 것이다. 한쪽은 음식물을 쓰레기로 버리고, 한쪽은 굶어서 죽고.
로마 교리성 장관 요셉 라칭거 추기경은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크리스찬 실존의 본질적 의미는 자기자신을 위한 존재에서 서로를 위한 존재로 넘어가는 (파스카)데 있다』면서 『크리스찬이란 자신이 보다 선사받음으로서 사는 자임을 아는 자이다. 따라서 스스로 얻어받은 것이 고마운 나머지 자기도 또한 너그럽게 나누어주는 거지와도 같이 선사하는 자가 됨으로써만 의(義)가 성립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찬』이라고 말한다. 우리 기억에서 소외되고 있는 북녘동포를 소회시키지 않기 위하여, 또한 북녘동포돕기에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함께 하기 위하여의 방법과 삶이 계속 모색되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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