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이민간지 10여년만에 그녀는 집을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하기 전날 밤은 너무 들떠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드디어 날이 밝아 이삿짐을 싸들고 새집으로 옮겨갔다. 파란 잔디가 깔린 아담하고 예쁜 집으로 들어서면서 '이게 내 집' 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빨리 안 들어가고 뭘 해?』
뒤에서 짐을 들고 있던 남편이 재촉했다. 그녀는 숨을 깊이 몰아 쉬고 현관으로 올라섰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신발장 위에 놓인 자그마한 화분과 봉투가 눈에 뜨였다. 아마도 전에 살던 사람이 잊고 간 모양이라고 생각 하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 겉봉에는 뜻밖에도 남편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집에 이사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 집에서 10여년을 살면서 저희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오시는 분들께도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으음, 이런 사람이 살던 집이라면…」전주인의 따듯한 마음씨에 그녀는 새 집에 더욱 애착이 갔다.
냉장고에는 잔디 치우는 날,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날 그리고 필요한 전화번호가 꼼꼼하게 적혀 있는 메모가 부착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찬장엔 몇 장의 행주가, 욕실엔 수건 비누에 휴지까지 걸어 놓고, 정원에는 잔디 깎는 기계가, 지하 홈 바에는 거기에 알맞게 짜여진 예쁜 의자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사용방법과 용도 등에 대한 간단한 메모가 곁들여 있었다. 그리곤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있거나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을 하라고 자신의 집 전화번호까지 남겨두었다. 새로 이사온 사람을 위해 당장 이삿짐을 풀기 전에 필요한 도구들을 곳곳에 챙겨두고 꼼꼼하게 마음 쓴 흔적이 역력한 집안을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살던 집을 생각하고 못내 부끄럽고 미안 했다. 겨우 청소만 말끔히 해놓았을 뿐 이런 배려는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타고난 곳이지만 결코 함부로 쓰는 법이 없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들은 철저하게 자연을 보전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그런 생활습관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정책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자신이 살던 집에 이사오는 새사람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 그것이 곧 후손에게 자연을 제대로 물려주는 첫출발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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