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광주대교구 신설 풍암동본당 주임으로 발령을 받았다. 철조망이 처진 성당부지엔 사람 키만한 잡초들만이 본당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첫미사를 봉헌하려고 하니 마음이 급했다. 이 본당 저 본당 찾아다니며 손을 내밀었다.
『사무장님, 제대초 4개와 미사주 한병만 주십시오』『수녀님, 쓰지 않는 미사도구와 제병 좀 주십시오』
이렇게 첫미사 봉헌에 필요한 미사도구들을 얻으려고 돌아다니면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느님, 제가 당신을 위해서 거지가 되었네요』
첫미사를 봉헌할 들뜬 마음으로 주일아침 일찍 눈을 뜨니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신부님, 천막이 무너졌어요』세찬 비바람에 천막성당이 무너져버렸다. 나는 천막을 빌려주고 세워주었던 신부님에게 전화로 큰소리를 쳤다.
『성전을 세워줄려면 확실하게 세워주셔야죠. 부실공사를 하니까 성전이 무너져버렸잖아요』
『하자보수공사 해주면 되잖아요』하면서 신부님은 크게 웃는다. 천막성당에 의자를 50개 놓고 가슴조이며 신자들을 기다렸다. 누가 신자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락도 별로 못했는데도 어떻게 알고 왔는지 53명이나 참석했다.
미사용 제대로 사용한 철제 책상 위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빗물을 피해 성체를 제대 위에서 이쪽저쪽으로 이동하면서 미사를 드렸다. 찢어진 천막 사이로 굵은 빗줄기가 내린다. 신발은 온통 황토 흙으로 뒤범벅이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함 위에서 천막성당의 첫미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천막 위로 내리는 빗소리를 뚫고서 강론은 계속되었다. 『신자여러분! 우리 각자 마음 안에,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의 성전을 쌓읍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