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9월 10일 오전 1시 박준규 국회의장, 김영진 의원 외여야의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진 「평화를 위한 국회종교의원 모임」에서 「평화정치를 기대하며」란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평화를 위한 국회종교의원 모임」에서는 종교계 원로들로부터 21세기를 맞아 평화정착을 위한 현명한 고견을 듣는 국회 평화 강좌를 열고 있다.
지난 7월 8일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강원룡 목사에 이어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김추기경은 이날 강연에서 인간존중과 평등을 정신을 깊이 새기고 입법과 정책에 반영시키려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추기경은 또 국민으로부터 뽑힌 선량으로서 지위를 남용해서 사리사욕을 챙겨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추기경의 강연 요지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엄청난 도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새천년기를 맞이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현재와 같이 IMF를 극복하지 못하고 나라 안에 온갖 부조리, 부정부패, 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 부익부 빈익빈을 해결하지 못하고 새 시대를 맞는다면, 특히 정치인들이 현재와 같이 끝없는 정쟁을 일삼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오늘 주제인 「평화정치」를 국내정치, 남북문제(평화통일), 세계평화 이 세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국내정치부터 말한다면 나라의 정치가 평화롭게 펼쳐지기 위해 ①정쟁이 아닌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나가고 ②노·사·정의 협력을 잘 이루고 ③국민은 부지런히 일하면서 준법정신에 따라 살고 ④법과 질서가 바로 선 분위기 속에서 상호 이해와 협력한다면, 이런 것이 평화 정치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헌법 46조에 규정돼 있는 국회의원의 의무를 잘 지켜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청렴하게 사는 국회의원상은 어떤 종교라도 신앙인이라면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따라야 함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을 따르는 가장 큰 교리는 무아(無我)이고 그리스도께서도 거듭 자신을 끊고 사심을 비우라고 가르치셨다. 쉽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정치인은 꾸준한 기도 속에서 자신을 비우는 노력을 해야한다.
국회의원 여러분들이 자신을 비우고 헌법에 따라 평화정치를 한다면 ①국민의 마음이 편해지고 ②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커져 ③나라의 모든 일이 잘 풀리고 ④경제 발전에도 도움되며 ⑤문화를 비롯한 국력이 크게 신장돼 ⑥국제사회에서의 신망도 얻고 ⑦무엇보다도 우리의 분단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우리 각자 자기자리에서 모든 이웃과 화해하고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옆의 이웃과, 지역과 지역간에, 계층과 계층간에 서로 손을 잡고 용서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알아야 이북 동포들을 화해와 협력으로 유도할 수 있고 마침내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이에 무엇보다도 정치지도자들이 국회에서 여·야간에 참으로 손을 잡고 화해와 협력을 해야한다.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라고 한다. 따라서 누구보다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이를 구현하도록 해야한다.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은 천부적인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문제로써 하느님을 믿고 인정할 때에만 설명이 가능하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절대적으로 조건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다. 하느님은 우리가 건강하고 보기 좋을 때 뿐 아니라 병들고 노쇠하거나 그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현재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없으면 인간이 존엄할 이유도 평등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으로써 참으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존중할 줄 알자는 뜻에서 헌법 10조와 11조에 선언된 인간 존엄과 평등을 강조한다.
이같은 인간존중과 평등의 정신을 깊이 새겨 모든 입법과 정책에 반영시키려 노력하고, 정치를 인간중심으로 이끌어 간다면 우리 정치는 진실로 평화정치가 될 것이고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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