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녹음도 머지않아 가을빛은 띄게 될 것이다.
들풀도 푸른 빛을 잃고 갈색으로 바뀌어 갈것이다. 밤이 익어가고 온갖 열매들이 영글어 가는 가을 산은 생명이 어떻게 열매 맺어 겸손해지는 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지난 주엔 남원엘 갔다. 영호남 적십자 봉사원의 제2회 지리산 우정의 한마당이 그곳에서 펼쳐졌다. 영호남이 지리산 중심으로 모여 서로의 피를 나누는 뜻깊은 자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경상도에서 모은 혈액이 전라도에 전해지고, 전라도에서 모은 혈액이 경상도에 전해지는 일은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동서화합에도 큰 몫을 한 행사였다.
지리산은 3개 도 7개 시가 어깨를 맞대고 삶의 보금자리를 이루고 있는 민족의 병산이다. 전남북과 경남북이 지리산 기슭과 섬진강 가에서 예로부터 살아오며 이 산의 산나물과 이 강의 물기를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시며 살아왔다.
지리산 우정의 한마당
지리산 기슭과 섬진강 가에 오면 도의 경계선이나 시의 행정구역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사람이 편의상 전남북을 나누고 경상도를 갈랐을 뿐 어디에도 나눔과 갈라섬의 흔적은 없다. 사람들의 지도에만 선이 그어지고 지명이 갈라졌을 뿐 태고적부터 그 자리에 있는 강산은 오직 하나의 산등성, 강줄기일 뿐이다.
지리산 골짜기의 고사리가 영남 것이냐 호남 것이냐를 놓고 다룬다면 산신령이 노할 일이 아닌가? 지리산 구비를 감돌아 흐르는 섬진강 물 한 바가지를 떠놓고 이것이 어느 지역의 물이냐고 물을 수 있는가? 하늘의 뜻과 대자연의 순리는 지고한 것이다. 하늘, 땅, 사람이 하나라는 사상이 반만년 이 국토를 국토답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평등과 박애의 사상은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받들어온 민족의 얼과 혼이 되어온 것이다. 좀더 폭넓게 생각한다면 가톨릭의 정신도 적십자의 정신도 우리 민족의 이상과 멀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호남의 뿌리가 하나임을 밝히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서 사랑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영호남의 동질성을 다지는 적십자사의 「지리산 우정의 한마당」을 펼쳤다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상과 정신을 부정하고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일들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우리 민족을 외국에 소개할 때 「문화적 동질성과 동일언어를 갖고 있는 단일 민족」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도 안으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무리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굴절된 지역감정을 바탕으로한 지방 공동체와 이기주의에 근거한 가족공동체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가족이기주의와 파벌주의와 지역감정이 얽히고 설켜(확인요!) 민족단위의 공동체 의식마저 마비시킬 때 총체적 난국은 또다시 올 수가 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을 해치고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에 장애물이 될 뿐이다.
동서화합으로 민족대통합을
우리의 전통윤리가 아는 사람들만의 닫힌 공간에서 생겨난 일견이 있다면 이 시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민윤리는 「낯선 사람들과의 열린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윤리」여야 한다. 그런면에서 이 시대의 동서화합의 문제는 국민대통합으로 이어져 승화되어야한다. 개혁과 화해의 정치를 위해 앞장선 만델라의 말을 새삼 되새겨 보자. 『분열의 망령은 화합으로 바꾸고, 어제의 적은 새로운 시작의 동반자가 되었다. 파괴와 복수의 외침은 용서와 이성적 추구의 함성으로 변했다』
이같은 선언이 한반도에서 확인될 때 우리는 비로소 민족공동체에 뿌리를 둔 국민대통합, 민주대통합이 이뤄졌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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