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권리장전」
1.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
2. 모든 환자는 의료진의 성실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3.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의 전문분야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4.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자신의 질병, 현재의 상태, 치료계획 및 예후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5. 모든 환자는 자신의 질병 퇴치를 위한 순 의학적 시도나 교육의 참여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6. 모든 환자는 치료, 검사, 수술, 입원 등의 의료행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행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7.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이나 법적으로 허용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의무기록 열람을 금함으로써 진료상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8. 모든 환자는 진료와 관련하여 알려진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9.모든 환자는 진료비 내역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의학윤리란 무엇인가?. 김중호 지음. 바오로딸 출판사 1995. 인용)
이 권리장전은 1993년 3월 연세의료원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의료 소비자인 환자들 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선포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한국에서 환자의 권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의사에게 입원을 거절당하는 현실이 환자의 권리입니까? 그것이 환자를 존경하는 의사의 모습입니까? 응급실을 떠나는 의사들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것이 환자의 권리입니까? 「환자의 권리장전」을 작성한 분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천박한 의료기술자
『의료대란 기간 동안 컴퓨터 통신망에 『환자들이 되도록 많이 죽고 많이 고생해야 정부가 굴복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비롯해서 의료계의 과격한 글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읽고, 분노의 단계를 지나 혐오감까지 생겼습니다.
물론 그들이 일부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의사이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입니다. 또 그동안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단순히 돈벌이 대상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알지 못하는 의사는 더이상 의사가 아니라, 천박한 의료 기술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응급실을 떠난 의대 교수들은 바로 그런 의료 기술자를 양성하는 직업 훈련원들일 뿐입니다.
땅에 떨어뜨린 의권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료계는 국민 전체의 생명을 인질로 잡고 투쟁을 했습니다. 의료계의 주장이 백퍼센트 옳다고 해도 그런 행동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의사들은 이 사회의 특권층이 아니고, 의료계는 성역이 아닙니다. 다행히 협상이 타결되어서 의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계속 성역화 한다면, 이제 의사들은 더이상 권위를 갖고 진료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더이상 의사들을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들은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의사들을 지금 그들이 그토록 내세웠던 「의권」과 「진료권」을 그들 스스로 땅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응급실을 끝까지 지킨 의사들이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이 대단한 결속력을 과시하며 개인의 뜻을 접고 집단의 뜻을 따른 것은 스스로 인술을 포기한 모습일 뿐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양심
주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단 하나의 연약한 생명이라도 함부로 꺾지 말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교회는 사형제도, 안락사, 낙태수술 등을 반대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적극 대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의료대란에 대해서는 왜 침묵을 지키는 모습으로 보입니까? 인간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가르쳐온 성직자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습니까? 『혹시라도 의사들이 교회에서도 하나의 기득권층을 형성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또, 의사이면서 동시에 신앙인인 분들의 처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집단 폐업 사태에서 「가톨릭 의사회」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위급한 생명을 돌보는 자신의 직분과 신앙인의 양심을 망각한 채 하느님을 찾는 것은 위선이고 거짓 신앙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수의 환자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소수의 환자는 희생해도 된다는 생각과 행동은 주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대죄입니다.
검찰 법집행 공정해야
검찰은 법 집행을 공정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각종 공안 사건에서 신속하고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던 검찰이 단순히 폐업을 철회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들의 선처를 약속하는 것은 또다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난과, 기득권층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검찰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 친척 중에도 의사들이 있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망각한다면 아무리 친척이라도 저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릴 것입니다. 이 땅의 지성인으로서 의사들이 좀더 지혜롭게 처신하고 양식 있는 행동을 하기를 촉구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다가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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