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기 전 하루가 늦춰져 기대 반 우려 반하는 마음으로 이번 회담이 잘 될 수 있을까 하며 마음을 졸였는데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항에 발을 내리기 전 기내에 대기하고 있을 때, 환영인파의 환호성이 들렸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보여 그순간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숙소인 주암산 소로 향하는 그 긴 연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열렬히 환영해 주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손을 흔들며 그들의 환영에 답했다. 주암산 초대소는 모란봉 위에 세워져, 대동강과 능라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주 경치가 좋은 곳이였다.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이 잘 작동되고 있었고 냉장고에는 우리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려는 마음이 읽어지듯 술과 과일 등이 가득 넣어져 있었다.
정상회담 위한 기도
지난 95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으로 현 광주대교구 최창무 대주교 등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조선가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위원장(현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겸)을 만난 적은 있지만 북한방문이 처음인 나로서는 뭔가 떨리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사실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하게 된다는 소식이 있은 뒤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미사에 참석했던 나로서는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었다. 특히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5월에 대통령이 참석해 개최됐던 조찬기도회에서 성서를 봉독하기도 했던 나는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또 대통령의 건강을 위해 간절히 기원했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있다는 것을 안 대통령도 참으로 감사하다며 기도를 요청했었다.
무엇보다 이번 정상회담 중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교황님을 초청하도록 권유하고 애착을 갖고 성사시킨 것은 신자 대통령으로서 북한의 복음화를 항상 염두고 두고 계셨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이번 방북기간 중 북한측 고위인사로 참석한 장재언 위원장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한국교회 인사들과의 교류시 일이 잘 풀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도 잘 해보자고 화답했다.
무엇보다 이번 방문길에는 전체 특별 수행원 24명 중 10명이 경제인이 참여할 정도로 경제협력에 많은 관심을 가진 방문길이었다. 나 자신 경제인의 한사람으로서 참석했기에 6월 14일 오후 정상들간에 수 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이 이어질 때 우리는 경제사회단체분야 회의를 북측 관계자들과 가졌다.
이때, 북쪽 관계자들에게 그들이 싫어할 만한 얘기를 많이 했으나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자세인지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 형식적이 아니고 경제협력을 진심으로 하고자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제도적 장치가 돼 있지 않아 어려웠음을 얘기 하는 등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했다.
14일 저녁 만찬 도중 두 정상이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발표할 때, 55년만에 분단조국이 통일을 향한 첫발을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평화정착의 길로 들어서고 있구나 하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흐뭇했던 일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통령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있다는 것을 곁에서 볼 수 있었던 점이다. 두분이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 그러나 전체 50여시간의 방북기간 중 6시간 이상을 두 정상이 함께하며 충분하게 인간적인 신뢰를 쌓았다는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이끌어 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화합과 용서의 정신
특별히 이번 정상회담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우리 민족에게 내려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년의 정신이야말로 화합과 용서의 정신이 아닌가. 하느님의 섭리하심이 한반도에 있기에 6.15 공동선언이 가능했을 것이다. 일제 해방이 8.15 성모승천대축일에 있었듯이 이번 회담성공도 대희년에 주님이 주시는 축복인 것이다. 정상간의 만남, 공동선언문 발표를 계기로 남북한 신자들이 주님 품에서 하나된 민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제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우리 모두는 또 새로운 각오로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일치, 통일을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를 위해 우리 신자들은 우선 열심히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 95년 뉴욕에서 북한신자 대표들과 처음 만났을 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민족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고 그후 열심히 기도하지 않았는가. 그 결실이 이번 정상회담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우리를 대신해 신자인 김대중 토마스모어 대통령이 그 일을 해냈다. 대통령이 신자가 아니였다면 아마 교황님의 초청을 그토록 염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신자들은 기도와 함께 경제사정이 어려운 북한동포들을 사랑의 정신으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굶고 있는 북한동포들, 내 혈육 내 핏줄을 위해 식량 보내기 운동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지속적으로 북쪽 동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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