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2백만명의 민족대이동이 시작된 지난 주, 전국의 고속도로, 국도, 철도변에서는 허수아비 축제가 벌어졌다.
새천년준비위원회가 주관한 새천년 맞이 행사 중 천년의 허수아비전이 그것이었다. 자연.희망.향수.해학의 뜻을 담은 320개의 대형 허수아비는 3천2백만명의 민족대이동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각 지자체들도 다투어 들판에 허수아비들을 세워놓고 고향방문을 반겼다.
재앙을 막아준다는 액막이 허수아비의 덕택이었을까? 태풍 「바트」가 한반도에 상륙하리라는 예보에 불안한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지만, 태풍 바트는 한반도를 피해 일본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니었던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한 옛 분들의 지혜를 알 것만 같다. 때를 알고 분수를 안 조상들의 가치관은 나물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속편하게 누워있을 때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천년의 허수아비전’
지난 주 추석날인 23일은 새천년 100일을 앞둔 날이었다. 추석연휴를 보내고 새천년을 90여일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화두는 무엇일까? 지난 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코피아난 유엔사무총장은 현 국가경제 질서에는 경쟁만이 있고 인간적 배려가 없다고 지적하고, 인간적 가치를 포용하자고 호소했다. 최근 유네스코도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자는 윤리적 세계화운동을 전개했다. 이제 21세기 첨단정보화 시대일수록 인간성 회복 운동은 뜨겁게 일어나야 한다.
21세기에는 국가가 절대권위를 내세우거나 일방통행식의 국민통제는 불가능해질 것이며, 21세기에는 화해와 평화의 원칙이 한반도의 통일을 앞당기는 이데올로기가 될 것이다.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야말로 휴머니즘으로 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새천년은 너 죽고 나 살고 식의 파괴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너 살고 나 살고의 상생체제를 요구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공감이 간다.
가을은 나눔의 계절이다. 한가위 연휴동안 고향을 찾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온 지금,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는가. 경제상황이 호전되면서 한쪽에서는 예전의 흥청거림이 다시 고개를 든지 오래지만 아직도 질곡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신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사라지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라질 시간을 달라 이것은 지하 332m 막장 안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탄광 노동자들의 외침이다. 과연 우리사회는 지금 인간적 가치를 포용하고 있는가? 눈을 정치쪽으로 돌려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는 더욱 아쉽기만 하다. 정치권은 내년으로 예정된 선거를 앞두고 저마다 칼을 벼르고 흙탕물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나눔의 미덕이란 말이 어디 가당키나한 말인가! 지역주의의 갈등은 더욱 증폭돼 가장 심하게 갈가리 찢긴 땅덩어리가 될 우울한 전망이다.
이웃의 짐을 나누어지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주님, 제가 질 십자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20세기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가을을 맞으며, 최근 등장한 월드컵 개최 허수아비, IMF허수아비, 비리 정치인 허수아비들을 보며, 새삼 릴케의 시 가을날의 한 구절을 음미해 본다.
화해.용서의 정신 필요
가을에는 좀더 겸손해지기를 위하여, 좀더 고독해지기를 위하여, 우리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하여…. 좬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중략)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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