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보내고 6월을 맞으며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것은 우리들 가정의 모습이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닮아있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 사회의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는 생각이 드니 어찌된 일인가!
새천년 들어 처음 맞이한 가정의 달, 성모성월 5월에 행사도 많았고 신문 잡지 방송에서는 가정 문제에 대한 논의도 다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달'에 가정이 뿌리째 뽑혀 무너지는 것 같은 사건들이 어느 해보다 많았다.
자식이 친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계모가 어린 딸을 오랫동안 학대하다가 뇌사상태에 빠뜨린 뒤 끝내 숨지게 하는 등의 패륜범죄가 꼬리를 물었다.
특히 명문대생 이모씨의 부모 토막살인 사건은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살인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끔찍하고 불쾌한 패륜적 사건은 상식적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엄부(嚴父)가 필요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가정 안의 대화부족과 이기심, 불신 등으로 가족구성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갈등이 폭발했을 경우 문제해결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범죄행위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한 가정의 참극은 『전통적 가정이 해체되면서 가정 안에 구성원 사이의 경제적 공유만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최고만을 추구하고 인간의 기능적인 면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만연한 사회에서 반인륜범죄는 자라난다는 것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반인륜범죄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1997년에 존속살해 37건을 포함해 존속폭행 225건 등 모두 796건이던 패륜범죄가 이듬해에는 존속살해 52건, 존속폭행 403건 등 모두 1160건으로 45.7%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에는 존속살해 51건 등 모두 1379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다시 18.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학력과 경제력에 관계없이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며 그 수법 또한 더욱 흉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산층 가정에 패륜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엄부(嚴父)를 「무서운 아버지」로 잘못 해석하는 가족문화가 없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자녀들에게 규범질서와 원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때로 엄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무섭기만 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대화와 토론이 없는 가정, 자녀의 적성이나 개성을 존중 하지 않고 아버지가 정해놓은 가치관의 틀에 맞추려는 가정에서 문제아들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극히 심화된 지금 상황에서 자존심이 상처를 입을 경우 우울증과 함께 분노, 적대감 등이 수반되기 때문에 충격적인 패륜 사건이 생길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심히 흔들리다 못해 무너지고 있다.
부모의 과잉보호와 지나친 간섭이 입시 위주의 교육이나 최고 지상주의의 경쟁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없지 않은데, 그것이 자식에게 부모에 대한 적대감을 일으킨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자식에게만 매달리지 말자
아버지의 권위가 퇴색하고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의미없어 보이는 5월 성모님의 달, 가정의 달, 그래서 이 시대의 부모들은 우울하고 때때로 불행감에 빠져든다. 과연 한국의 부모들은 지금도 자녀를 양육하는 데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지난 달 세계 70여 나라에 지부를 둔 국제자선단체 「아이들을 구하자(Save the Children)」는 「2000년 세계 어머니들의 상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에는「어머니 행복지수」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조사대상 20개 선진공업국가와 86개 저개발 국가 등 총 106개국 중에 한국이 스물 한번째 순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조사대상 20개 선진공업국에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 상당수 유럽 국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제 한국 어머니들의 행복순위는 좀더 내려가 30위권에 위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자식에게만 매달리지 말자. 부모와 자녀들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 자녀들을 통해 부모의 행불행을 저울질 하지말자.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일정한 거리를 갖고, 냉혹하고도 이성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울 때 행복한 가정은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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