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계절.
수줍은 낯빛을 가진 소박한 꽃, 진달래가 산자락을 덮고 있다. 세계 꽃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일산 호수공원 꽃밭에선 어린이들의 모습이 꽃보다 아름답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 날은 찾아왔고 어버이날도 찾아 온다. 청소년의 달 5월, 가정의 달 5월, 성모성월이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섯살짜리 엘리안 곤살레스라는 쿠바 소년도 우리에게 남의 얘기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념의 사슬에서 풀려나야
이 소년은 지난 해 추수감사절 때 엄마 등 10여명과 함께 쿠바에서 미국으로 밀항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난파선의 뱃조각을 붙들고 이틀동안 표류했다. 엄마와 일행은 대부분 죽고 다른 2명과 함께 미국영해에서 극적으로 구출됐다. 그리고 마이애미에 있는 친척접에 머물고 있었는데, 미국정부는 여섯살배기 이 쿠바소년을 그 친척들로부터 빼앗기 위해 무장병력을 동원한 기습작전까지 벌였다.
쿠바의 통치가 싫어 빠져나온 소년이란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겠지만 결국 여섯살 어린이는 냉전의 볼모가 되어 미국 땅에 발이 묶여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됐다. 냉전의 희생자들이 어찌 엘리안과 이들 쿠바 국민들이겠는가. 한반도의 북쪽에도 엘리안 또래의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하루하루 생명을 부지해가고 있지 않는가. 6월을 향해 남북정상회담의 길이 닦여지고 있으니까 북한의 어린이들이 이념의 사슬에서 풀려 굶주림에서 벗어날 날이 올 수 있을런지.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침침한 독방에 홀로 앉아서 식은 저녁밥을 받았습니다/… 사는게 별거야/ 혁명이 별난거야/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늘 땅에서 떳떳이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거지… 아 함께 밥 먹고 싶어
노동자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노해씨의 한 밥상에라는 이 시는 여럿이서 함께 밥먹는 것을 희망삼아 노래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머쓱하게 혼자 밥을 먹어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빈부격차 없는 세상을
경기가 회복됐다지만 실업자는 여전히 100만명 수준이고, 결식아동도 올해 16만명에 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일부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가난해도 떳떳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이들이 찾을 수 있을까. 해방 후 그리고 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그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부모 세대들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못먹고 못자란 한을 자식 세대를 통해 풀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소를 팔고, 문전옥답을 팔아 자식만은 공부시켰고, 고액의 불법과외라도 시켜 대학에 보냈다.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 정성이 효험을 보아 두뇌 한국을 일궈냈고, 빠른 성장으로 경제 강국임을 뽐냈다. 그러나 IMF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며 다시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없는 자로 확연히 갈렸다.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우리 사회에 빈곤층이 폭넓게 자리잡게 되었다. 빈민기금 조성이란 궁여지책까지 나오고 있는 판국에 이른 것이다. 플라톤은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5배 이상 수입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중세 프랑스 법령에도 부유와 빈곤은 평등의 사회에서는 소멸되어야 한다. 고로 부자는 최상급의 흰 빵을 먹고, 가난한 자는 저질의 빵을 먹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빈부의 격차를 늘려 20%의 가진 자가 80%의 없는 자를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통령이 부정한 돈을 축재하고 있을 때 도시서민은 전세돈 200만원이 없어 자살했고, 서울 인구 절반이 무주택으로 살았으며 빈민의 78%가 셋방살이를 살았다.
우리도 세끼 밥 먹을 줄 알아요. 1년은 365일이에요. 학교에서 급식주는 280일이 아니라구요. 2000년에는 하루 세끼를 먹고 살고 싶어요
이보다 더 처절한 외침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하루 세끼 밥을 365일동안 걱정없이 먹도록 해주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부끄러운 어른 노릇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지금도 어디엔가 끼니를 거르는 어린이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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